(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이래, 한국교회는 한국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며 한해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적 입장과 보수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주권 강탈과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전쟁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와 사회운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의 중추 세력으로, 때로는 친일과 부일의 핵심적 동조자로, 때로는 근대화와 민주화의 주도 세력으로, 때로는 독재와 비민주세력의 맹목적 지지 세력으로, 때로는 진보와 성장의 견인차로, 때로는 그 길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한국근현대사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민족과 영욕의 세월을 함께 보낸 결과, 찬란한 성취의 기억과 극복해야 할 지난한 과제를 역사적 유산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한편, 2020년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창궐 속에서 한국 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부각됨으로써, 한국 교회사에서 또 한 번의 암흑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순식간에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 19’ 때문에 세계가 전대미문의 혼란에 빠졌고,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상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직장문화, 작업환경, 대인관계 등에 상상 밖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때에, 교회 안에서 집단감염자가 발생하여, 한국 교회 전체가 사회적 관심과 비판의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결국, 교회의 대면 예배 금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한국 교회는 순간적으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주일 예배 중심으로 진행되던 신앙생활이 벽에 부닥치자, 교회마다 어떻게 예배, 교제, 교육을 감당할지 몰라 크게 당황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부의 교단 지도자들과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가 주도하던 반정부 집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한국 교회를 항한 사회적 비난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교회 내부의 갈등도 극에 달했다. 지금도 어렵지만, 교회의 내일은 더욱 암담해 보인다.
흔히, 한국 교회의 주된 신앙적 흐름을 학자들은 ‘복음주의’라고 명명한다. 이 용어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복음주의 연구자인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에 따르면, 복음주의는 성경, 회심, 십자가, 복음전도를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복음주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영미권에서 크게 발흥했으며, 그런 영향 하에서 한국 교회도 복음주의가 주류를 형성했다. 흔히, 복음주의는 현세보다 내세, 구조보다 개인, 육체보다 영혼, 사회보다 교회에 방점을 두었으나, 시대와 지역의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며 참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미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핵심적 교훈과 각 시대의 진보적 정신 간의 창조적 대화를 추구하면서, 노예제도, 여성참정권, 빈민문제, 전쟁과 환경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발언하고 행동했다. 한국 교회의 경우도 정교분리를 강조하며 교회의 정치참여를 거부하는 그룹, 반공주의, 친미주의, 친자본주의를 성경적 기치와 동일시하면서 정치 참여를 지지하는 그룹, 반면, 신학적 보수주의를 견지하되 진보적 정치이념을 추구하는 그룹이 공존해 왔다. 따라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내에서 ‘복음주의=근본주의=보수주의’란 공식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들 간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현재 ‘코로나 19’ 사태로 드러난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냉혹한 사회적 비판의 핵심은 한국 교회 일부에서 포착되는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실천,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편견이다. 그 결과, 한국 교회가 역사 속에 남긴 명(明)과 암(暗) 중에서 명은 점점 약화되고 암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즉, 과거에 한국 교회가 민족과 역사 앞에서 등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종교의 원초적 기능에서 벗어나, 타자와 공동체를 위한 보편적·공적 가치를 추구·실천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교회가 시대의 그늘로 추락한 때는 개인적 이익과 사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적 가치를 간과하거나 포기했을 때다.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 19’와 ‘전광훈 현상’ 속에 드러난 한국 교회의 모습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강도 만난 이웃과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제사장과 레위인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진지하게 묵상하고 우리 주변을 세심히 살핀 후, 자기를 부인하고 그분의 말씀에 겸허히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눅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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