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 : 삼일교회 송태근 담임목사
[지난 2020년 10월 21일(수) 서울 청파동에 소재한 삼일교회(장로교 합동)에서 송태근 담임목사를 만났다. 삼일교회는 오래전부터 청년 교인의 비율이 높은 교회이고, 성도를 말씀의 기초 위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세워나가길 노력해 온 교회였다. 최근 한국 교회는 예상치 못한 범사회적 재난 속에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건강한 정체성의 향방을 묻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재난사회 속에서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일시 & 장소 : 2020년 10월 21일(수), 서울 삼일교회
인터뷰어 : 박동열 (서울대 교수, 동역회 실행위원장)
정리 & 사진 : 석종준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박동열 :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역교회 담임 목회자로서 ‘코로나 19’로 상징되는 현재의 재난 국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송태근 : 교회 공동체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삼일교회는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한 단계로 진입하면서, 적극 대처를 위한 여러 준비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행정 조치 한 주 전 토요일(2월 23일)로 기억하는데요. 장로님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예배의 비대면 전환을 전격 결정하였습니다. 교회 행정도 정부가 발표하는 확진자 증감의 추이와 정책에 따라 협조하고, 방역 조치도 최우선에 두고 진행하였지요. 또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동선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도표화하고, 즉시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전 교인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였습니다. 확진자 주변 성도님들께는 ‘코로나 19’ 검사 요청을 드렸었고요. 서울시는 우리 교회의 이러한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역 대책이 인상적이었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화로 표해 오기도 했습니다.
박동열 : 현재와 같은 재난의 국면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송태근 :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보통 ‘왜’(why)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 상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게 되고, 이런저런 재단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표적 삼는 일도 발생하게 되죠. 이 ‘코로나 19’ 사태에서는, 처음 신천지가 표적이 되었다가 다음으로는 동성애자를 향하여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대처방식을 유심히 살펴보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당시에도 세계적으로 무시무시한 기근이 닥쳤었는데, 그때 과연 사도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보니까 사도들은 누구 때문에 재난이 왔다고 분석하거나, 왜 발생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먼저 ‘무엇’(what)을 생각했습니다. 즉 긴박한 시간에 그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대신에 즉시 행동에 옮긴 것이죠. 사도들은 곧바로 당시 막 개척된 교회들에게 세계적 재난(기근)을 위한 헌금에 동참할 것을 촉구합니다. 결과 이방의 초대교회들은 우선 구제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을 경멸의 태도로 바라보았었는데요. 이것을 계기로 콘크리트 장벽처럼 공고히 막혀있던 그들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중요한 결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에베소서의 ‘막힌 담을 허시고’라는 표현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의 교회들이 걷어서 보내준 구제헌금을 받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헌금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고백을 의미합니다.
수천 년 가로막혔던 장벽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으로 무너집니다. 이것은 누구도 계산할 수 없었던 복음의 진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 팬데믹 상황도 그리스도인들이 왜(why)라는 질문보다는, 이 환란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이웃에 대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성경 안에서 이 질문에 따른 답을 찾고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러한 시대의 저변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죠.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마지막 유언으로 4만 프랑을 남기면서 이 돈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 사랑했던 세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영혼’, ‘책임감’이라는 단어였어요. 프랑스의 대문호인 그의 시대로부터 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인생의 태도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죠.
저 또한 이 어려운 상황에 팬데믹의 의미를 소상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성도들과 많은 청년들이 과연 이 상황 속에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을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고민 끝에, 계속해서 긍휼 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팬데믹 상황으로 노숙인분들에게 식사 등을 지원하는 보급소들마저 다 문을 닫았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 것이죠. 식사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으로 폐쇄된 여러 곳의 상황을 대신해서, 삼일교회는 컵밥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는데요. 요즘 거의 300명 가까운 분들이 새벽에 찾아옵니다. 지난주부터는 정부 지침과 함께 예배당을 오픈할 수 있게 되었지요. 소예배실에서 100여 명 가까이 되는 분들과 말씀을 간단히 읽고, 담당 목사님이 묵상한 것을 나누고 상담도 하면서 이런 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동열 : 프랑스 같은 경우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문화적으로 대단히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K-방역’이라 해서, 예배나 소그룹 대면 모임 등을 국가가 제약하는 것에 대해 종교 탄압의 의미로 해석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목사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송태근 : 저도 그런 갈등이 없지는 않지요. 그렇지만 교회가 세상 속에서 근심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삼일교회 같은 경우, 과거에 큰 풍파를 겪었던 교회이기 때문에 장로님들과 다수의 성도님들 입장에서는 교회가 다시 사회의 조롱거리나 가십거리가 되는 데 대한 굉장한 부담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목양하는 저 또한 이견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제약이나 무거운 권고가 있는 상황이 올지라도, 저희는 어찌 되었든 첫 번째 사수할 가치로 “진정한 예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장 우선에 두고 자문해봅니다. 진정한 예배라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지만, 진짜 경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성경은 이웃 사랑을 말씀하거든요. 이웃에 대한 섬김과 사랑이 진정한 예배의 핵심인데요. 그것을 우리가 마다한 채로 그저 종교성에 근거한 예배 형식만 고집하고 강조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독교가 여타 종교의 또 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이웃 사랑에 대한 가치를 교회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참된 예배의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동열 : 목사님께서는 최근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서 지금 우리의 ‘코로나 19’로 인한 재난의 국면은 ‘이기적 자아에서 이타적 자아로,’ 더 나아가 ‘공공적 자아로의 인식 전환’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간단한 추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태근 : 현재 국면에서는 직접 만나 대면하는 심방이라든지, 능동적으로 찾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설교 준비로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는 것 외에는 어디 가서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죠. 어느 날, 요엘서를 읽는데 2장 17절에 “너희 제사장들아 낭실과 제단 사이에 서서 울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하필 “낭실과 제단인가” 라는 생각을 했죠. 그곳은 제사장들이 예배 준비를 위해 직무하는 공간이었는데, 에스겔서에는 거기가 우상숭배가 행해진 곳으로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참된 회개를 촉구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요엘서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니 이 말씀에서는 개개인의 죄를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회개를 철저히 촉구하고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 시대의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이웃에 대해 얼마나 무정하고 무자비한 일을 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알 수가 있죠. 사실 우리 한국 교회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너무 자기들끼리만의 리그에 도취가 되어 많은 교회가 유람선 역할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신학에서 보면 지상 교회를 어떤 의미에서 전투하는 교회라고 하지요. 분명한 적이 있고, 어둠의 세력이 있고, 그것을 향해 교회가 해야 할 마땅한 역할과 기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간 허락하신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죠. 일부이기는 하지만 사실 분명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이제는 교회가 ‘안’이 아닌, ‘밖’으로 쏟아내고 나누고 흘려보내고, 자신의 몸집은 더 작게 만들면서 이웃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19’ 정국의 역설적 선물은 지금 이 시기만큼 우리가 교회론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죠. “교회는 무엇이고, 예배는 무엇인가?” 이러한 본질적인 고민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하게 된 이 시기를 제대로 선용만 한다면, 이 과정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못지않은 제2의 종교개혁으로 가는 길목이 되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코로나 19’가 오기 전에도 한국의 교회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제는 끝이다, 위기다.” 하는 염려와 질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한 질책들은 겸허히 받았지만, 저는 한 번도 한국 교회가 정말 끝나가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교회의 거품은 빠지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허영과 허세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지금보다 더한 핍박과 박해와 위기가 무수히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비롭게도 교회는 정결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재난의 시련을 맞닥뜨린 순간에 우리 모두 ‘이기적 자아’를 버리고, ‘이타적인 가치관’을 실현하는 일 즉, 긍휼 사역에 더 초점을 맞춰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을 ‘공공적 자아’로 인식하는 실천 외에는 그간 교회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 달리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동열 : 목사님 말씀하신 ‘공공적 자아’라는 것이 이번 호 <신앙과 삶>의 주제인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과 연결이 참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재난의 국면에서 공공의 선을 어떻게 구현해 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 공적 신앙의 측면, 또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 조금 더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태근 : 한국교회가 선교에 대한 열기도 뜨겁고 열정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근거를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여기서 ‘가라’라는 단어를 히브리 말로는 ‘하라크’라고 하는데요. 그 말을 영어로 ‘go’라고 번역하지 않고, ‘walk’(걸으라)로 번역합니다. 사실 선교라는 것은 하나님과 걷는 것이에요. 이와 더불어 그건 일상을 강조하는 것이죠. 어디 특정한 장소로 가라는 말이 아니고, 사실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 그리고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제가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청년들의 일터 그리고 일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 내는가가 선교의 참된 의미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한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함께 누리는 것에 익숙했고, 선교가 이러한 체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이기도 쉽지 않을 시대가 계속된다면 온라인상에서 스스로 어떻게 체질을 개선하여,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 하나님과 같이 걷는다는 것이 선교에 관한 창세기 12장 1절 본문의 진짜 의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 목회자들도 고민하는 것이 지금까지 성도들과 함께했던 제자훈련의 의미와 방식을 ‘새로고침’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교회의 기능에 맞추어 진행되는 프로그램 성격의 제자훈련이 많았지만, 이제는 이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 순간 들이치는 고난의 파도를 어떻게 서핑할 수 있을지 청년 스스로 현장에서 다루는 훈련이 중요하지요.
박동열 :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과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삼일교회에는 청년들이 많고요.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은 많은 경우 어려운 환경 속에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삼일교회 청년 사역에 가장 중점을 두고 계시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송태근 : 삼일교회가 예전부터 청년 비율이 많기는 했지만, 성경 기저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분은 솔직히 조금 약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가 삼일교회에 처음 부임해서 강해설교를 하는데요. 반응이 약간 호의적이지 않고 힘들어하였습니다. 한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대표 간사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뇌수술 당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래? 좋은 현상인 것 같다!”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었죠. 청년들과 함께 말씀 공부만 8년째 하고 있는데요. 결국 지금까지도 줄곧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성경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어떤 분의 글을 읽는데, 지금이야말로 ‘슈브’의 때라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슈브’는 히브리어로 “여호와께로 너희들이 돌아오면 나도 너희들에게 돌아오겠다.” 하시는 언약적 관점의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때, 즉 ‘슈브’의 때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면, 첫째는 삼위 하나님께 집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당연히 성경을 봐야지요. 모든 시대의 답은 항상 똑같았어요. 해답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현재도 저로서는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어떤 목회적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그들을 성장시켜야 하겠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목회 방향입니다. 대신 조금 답답할 정도로 일관되게 성경만을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근거이고 힘이기 때문입니다.
박동열 : 저도 캠퍼스 현장에서 청년들을 복음으로 섬기고 있는데요. 보면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취업,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느끼고요. 이 청년들에게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되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보여줄 필요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이 한국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 있는 청년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교회와 기성 세대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태근 : 저는 일 년 중 여름 두 달, 겨울 두 달 동안 우리 청년들과 함께 선교를 나갑니다. 일 년에 4개월 정도를 선교를 위해 해외로 나가게 되죠. 때로는 주일에 출발했다가 금요일에 들어와서 주일 사역 마치고 바로 다음 날 가기도 하고요. 잦은 빈도로 그렇게 다른 나라를 오고 가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향후 세대를 바라보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정말 똑똑해요. 대화할 기회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발상도 신선하고 열정으로 무장된 패기도 있고요. 이 청년들이 기독교 가치관으로 무장되어서 세계 곳곳으로 나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가진 기독교 세계관, 가치관이 그 지역에도 뿌려지겠죠. 그 지역도 청년들이 이웃들에게 실천하는 복음의 선한 영향력으로 좋아질 것이고요. 이미 우리 청년들은 거의 선진사회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진보된 기술을 접하였기 때문에, 그런 정신을 가지고 동남아나 동유럽 같은 나라들로 들어가면 생활력도 강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노량진에서 19년을 지냈어요. 공무원 공부하는 청년들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정말 똑똑한 우리나라 청년들이지만,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기간이 길어져서 오래 있게 되기도 하죠. 제가 그 친구들과 함께 사역할 때 그랬습니다. “삼 년 이상은 시험 준비하지 마라.” 이러한 규칙을 정해서 삼 년 지나면 무조건 취직을 종용했어요. 너무 아쉽게 1~2점이 점 모자라서 시험에 낙방하면 포기하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래 있게 됩니다. 그 친구들이 노량진 폐인이라고 자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좌절의 때를 삶의 전부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계 여러 곳에 가서 그들만이 가진 장점을 나눌 수 있도록 하려면, 혹시라도 교회와 기성세대들이 이념처럼 지닌 민족주의 같은 것을 먼저 허물어버리고 먼저 의식의 전환에 앞장을 서야 한다고 봅니다. 경쟁사회가 전부라고 몰아붙이는 한국 사회에서만 중요하게 보이는 제한된 가치 너머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마음껏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박동열 : 마지막으로, ‘코로나 블루’(코로나 19로 야기된 감염 불안증 또는 우울증)를 겪으며, 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청년들에게도 한 말씀 주십시오.
송태근 : 얼마 전에 94세이셨던 의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한원주라는 할머님이신데 부모님들은 독립운동가였고요, 80세에 은퇴를 하고 그때부터 요양 병원에 들어가서 의료자원봉사를 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이 돌아가시면서 딱 세 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힘내, 가을이야, 사랑해”.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삶은 정작 피곤할지 몰라도, 오늘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항상 새롭고 설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있으면, 삶의 모든 것이 사랑의 대상이 되고 설레고 기대가 되지요. 특별히 우리 성도들과 청년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세요. 그러면 힘이 납니다. 하루가 새롭고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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