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교회와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다. 나에게도 청소년 때부터 대학원 과정에 있는 지금까지 진로는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지금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고등학생 때의 나는 사회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였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직접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 과정에 가장 큰 개인적 동기는, 공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마음을 품게 된 계기는 대학 재학 중 선교단체와 지역교회, 그리고 신앙 서적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배움이었다. 특히 교회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단순히 영혼 구원의 영역에만 제한된 것이 아닌, 경제, 정치, 과학, 예술 등 사회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는 사실이 내겐 의미가 깊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 이라는 용어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영역에 미치며 그분의 백성인 우리는 부름받은 영역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 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삶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인지 고민하며 살아내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기쁨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술개발이 무엇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현재 로봇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있는 인공지능 기술들을 하드웨어 시스템에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로봇공학 및 컴퓨터 공학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그 속도를 따라가며 더 좋은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계 전체가 에너지를 쏟고 있는 분위기이다. 공학 내부에서 신기술의 가치는 기존의 기술보다 더 효율적인지로 평가되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자연스레 더 경제적이고 성능 좋은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연구자들에게 공학 연구의 당위성을 잊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기술개발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바는, 분야가 빠르게 발전해갈수록 정말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가치가 있고 유익한 기술’인지에 대한 대화는 뒤로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연구하고 있는 기술들의 의미와 뜻, 그리고 기술 개발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공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청지기로서의 책임’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조세계를 맡기시고 창조성을 주셔서,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만들어갈 수 있게 허락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을 이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피조세계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현대에 와서 기술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기에 기술 전문가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사회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큰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책임을 실감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우리 개발자들은 맹목적인 효율성 추구를 뛰어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무엇이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인지 치열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한다.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인 공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은, 이웃을 섬기는 적극적인 사랑의 윤리가 기술개발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술이 어떻게 우리 주위의 이웃들을 섬기는 것에 사용될 수 있으며, 욕망의 충족을 넘어 사랑의 표현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이러한 실천의 좋은 예로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나는 더 넓고 다양한 영역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는 주님께서 공학의 자리로 부르신 것을 믿고 있으며,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목적의 일부 임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 기술 발전이 주님의 사랑을 실현해가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내 삶을 드려서 탐구하며 살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고민이 형제 자매된 그리스도인 공학자들과 함께,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며 답을 찾아가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내 삶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 적용 가능한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으나,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고, 나를 통해 그분의 사랑이 실천되어가기를 기도하면서, 묵묵히 작은 것부터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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