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좋은 사회참여와 나쁜 사회 참여
<기독교와 시민사회> / 로버트 우스노우 / 정재영, 이승훈 공역 / CLC / 2014
시민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로버트 우스노우(Robert Wuthnow, 1946- )는 프린스톤 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다. 70세가 훌쩍 넘었지만 강의와 30여 권의 책을 통해 기독교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기독교 문화의 전통을 넘어 다문화 상황 속에 들어간 오늘의 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깨우쳐준다.
교회는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사회 속에 진리와 윤리를 되살려내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교회의 공공성의 회복이 필수조건임을 주장한다.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의 정신에 기초한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을 통해 시민 사회의 공적 영역을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사회를 정치화하는 대신 기독교적 봉사와 섬김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시민 사회는 위기에 처했다. 특히 신앙인들은 힘센 정부와 개방적인 언론과 진보적인 대학의 동맹이 종교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주요 공공 이슈에 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해봐야 소용없다고 느껴 스스로 물러선다고 했다. 그 결과 가속화 된 세속화의 핵심은 교회의 쇠퇴보다는 삶의 다른 영역들에 대한 신앙적 영향력의 쇠퇴에 있다. 물론 교회는 ‘사회 자본 양성’이나 ‘사회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와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낙태, 포르노, 동성애, 학교 교육, 마약 문제에서 영향력 쇠퇴는 명백하다. 법과 정치가 종교적 헌신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정치와 사회 기구들은 계시나 성경 등 종교적 규범을 공공 정책에 대한 주장의 정당한 기준으로 여기지 않고 합리성, 과학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이에 대응하여 1970년대 중반에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인 재탄생’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민 사회에의 참여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다. 그 선함 여부는 참여 방법, 즉 그것이 “시민적이며, 신뢰와 시민의 책임감”에 기초 했는지에 달려있다.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인이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특히 오늘의 사회는 신앙인들의 행동을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치적 의제를 신앙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득하다. 국가 기관과 공무원들은 법과 행정 절차만 따져 그것을 따르지 않는 종교 집단을 배척한다. 일부 기독교인은 신앙적 신념을 전체에 강요하는 것으로 비치거나 심지어 때때로 비상식적이어서 불신을 자초하기도 한다.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흉은 “문화전쟁”이다. 시민사회가 전통주의와 진보주의의 경쟁적인 세계관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전쟁을 부추기거나 선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문화 전쟁을 넘어서는 화해의 가능성 모색에 도움을 주는 희망적 흐름을 열거한다. 사회 전반에 종교적 입장 차이를 중재하고 화해 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들도 다원주의 상황을 재발견하고 있다. 문화 전쟁 대신 화해를 힘쓰는 것은 신앙인이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쟁점은 입장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시민 의식을 유지하면서 생산적 대화에 참여”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민 사회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기에 시장에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 따라서 시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민 사회의 건강함은 단체들 사이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에 달려있다. 기독교인들 중에 악의 현실에 무디고 법을 지킬 의무에서 면제된 듯 행동하는 것은 큰 문제다. 그들도 남들처럼 부패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법과 규칙을 준수하고, 제도적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안전 장치와 법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다문화와 다원주의가 시민 사회에 제기하는 도전은 무엇이며, 기독교는 그것에 대처해 적응할 능력이 있는가? 교회는 시민 사회와 밀접히 관련이 있어 다양성이 증대하는 다문화 사회 현실에 반드시 대응해야만 한다. 대응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정체성 정치로서의 종교”로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교회도 여타 단체와도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주장하는 방식이다. 둘째, “실용적 보편주의로서의 종교”로 기독교가 사랑과 봉사를 본질로 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다문화주의의 상대주의 비전을 흡수하는 태도다. 셋째 “시민 비평으로서의 종교”다. 이는 다원주의 사회 내의 차이들을 인정하면서도 예언자적 역할을 회복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자세이다. 저자가 특별히 셋째 방식을 선호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단적 주장이 아닌, “기독교를 믿게 되면 좀 더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킬”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저자의 결론은 ‘지적 세련됨을 위한 호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적으로 세련된 비평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찬성, 반대 이상이다. ‘지적 세련됨’이란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토론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을 포함한다. 특히 “박식한 비평가들의 철저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며 “진리를 알고 있다는 자기 주장에 대한 약간의 통제력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기 평가와 다른 이의 비판적 논평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현실 분석에 필요한 눈을 열어준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민주주의 사회의 축복인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참여의 특권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묻도록 이끈다. 또한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현실 속에서 만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성경적 안목에 입각해 바르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묻게 만든다. 지난날 기독교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지적 세련됨의 요소를 가지고 시민 사회가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혹시 무지와 무례로 기독교적 ‘세련됨’의 유산을 훼손하고 있지나 않은가? 저자는 질문만 던지지 않고 옳은 대답을 찾을 통찰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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