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코로나 19’는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별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 범위는 특정 지역을 넘어 글로벌하게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으로 문명사적인 전환 중이었는데, ‘코로나 19’가 도화선 역할을 하여 변화의 속도를 훨씬 앞당겼다는 것이 중론이다. 교회 또한 이런 변화와 혁신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향교회는 5년 전에 개척한 소형 교회로서 기존의 전통적인 목회와 교회 구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성도의 사귐’(Communio Sanctorum)으로 이루어진다. 예배는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으로 보내어진 자들의 신앙고백이자 격려와 회복의 ‘향연’(celebration)이다. 예배는 ‘미사’(Mass)의 의미대로 “자 이제 (세상으로) 해산합시다.”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이런 신학적 입장에서는 ‘교회당 중심주의’가 들어 올 틈이 없다. 목회란 교회당에 자주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세상 속으로 보내어 하나님 나라의 맛을 담아 낼 ‘전시(展示) 백성’(people of display)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그런 주장은 교회당에 오는 것을 불필요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교회당에 모이려는 의도와 목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는가?”로 바꿔봐야 한다. 교회는 ‘사명을 가진 교회’(Missional Church)로서 세상을 회복하고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에 초대되었다. 교회의 예배는 세상에 보내어져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려는 ‘선교적 자기정체성’(Missional Identity)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서로 확인하는 자리다.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것이 교회이며, 그것이 예배의 본질이다. 특히, 교회당 안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상과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를 실천하기 위함이다. 우리끼리 모여 자기만족적이며 사적 경건에 물든 예배와 모임만 하다보면 개인주의적 세계관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성경적인 교회는 “하나님은 어떤 세상을 원하고 계시는가?”에 대한 성찰과 해석을 하는 곳이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충실한 교회라면 ‘제의적’(ritual) 종교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해야 한다.
"청년이 있는 교회는 미래가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면 ‘코로나 19’ 이후의 교회는 청년 목회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청년 선교에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 서향교회는 20-30대가 성도의 70%를 차지한다. 청년과 장년(시니어) 사이의 세대차도 없고 청년들이 장년들을 닮으려고 하는 곳이다. ‘다민족/다문화 교회’를 지향해 왔기 때문에 청년층에서 여러 민족이 함께 예배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서향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고엘 뱅크’라는 청년을 위한 무담보와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신용협동조합형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금, 주거비, 의료비, 급전 등으로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주목적이다. 부채에 의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해주려는 은행이다. ‘고엘 뱅크’는 교회 개척 때부터 설립되어 현재까지 대출 건수 총 46회, 대출금 약 5천 8백만 원이라는 실적을 세웠다.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믿는다면 말과 혀로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할 때, 우리는 성도의 사귐이 교회 안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적인 화려한 말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베풀어줌으로 말하고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때로는 대면으로 때로는 온라인으로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성도의 사귐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더욱 가시화된 불평등이라는 문제 앞에서, 교회는 선제적으로 상호 돌봄과 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는(고후 8:13-14) ‘희년적 대안 경제’의 작은 실재를 실험해야 한다. 또한 청년 주거와 창업에 대해 청년 선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연대와 협력할 곳을 찾아서 연결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당을 청년 창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종교적 교인’을 양산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 사람을 키우고 세워서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서로 세워가야 한다. 그리고 함량 높은 양질의 영적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교회를 가꾸어야 한다. 교회는 계모임이나 상조회가 아니라 전진해 오는 하나님 나라의 면모를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곳이다. 교회는 사랑과 정의로 충만한 세상을 열망하는 ‘지사(志士)들의 결사체’다. 교회는 ‘세계관의 회심’을 통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세상의 빛이다. 권위주의적인 남성주의는 교회 안에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전근대성의 잔재이니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없는 ‘시민적 제자도’를 배워 일상과 일터에서 시범을 보여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 문명의 비전을 향도(向導)하는 첨병이자 하나님 나라 복음의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이다. 낡은 칼을 가지고는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없듯이, ‘코로나 19’ 이후 ‘뉴노멀(New Normal) 신학’과 대안적 영성이 아니고서는 교회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 생태 신학과 공동선으로서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알려야 한다. 평범한 해답 제시에서 벗어나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의심을 거친 믿음’으로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와야 한다. 시민사회에 유의미한 아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풀뿌리 작은 교회 운동이 말없이 멀리 퍼져가는 새로운 시대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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