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처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갖고 씨름하며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대학원생 시절부터였으니 다른 회원들보다는 일찍 시작한 셈이다. 1980년대 초, 서울에는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연구 모임이 서너 개 있었고 나도 거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임 배경에는 미국 평신도 선교사 원이삼(Wesley Wentworth) 선생님이 있었다. 당시 모임은 소박했다. 모임 장소로는 아현동 IVP 사무실이 많이 이용되었고 교회 교육관이나 개인 집이 이용되기도 했다. 대학원생들, 학부 졸업생들이 주로 모였지만, 때때로 교수님들이 동참하기도 하였다. 현재 그 중의 어떤 분은 이미 세상을 뜬 분도 있고 소식이 끊어진 분도 있지만, 여전히 ‘동역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신 분도 있다.
각 연구 모임이 따로 모이기만 할 게 아니라 함께 집담회를 하기로 하고 몇 분이 원고를 준비해서 발표하며 늦은 밤까지 토론하기 시작한 것이 1984년 여름이었다. 그 후로 여러 모임이 결성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역사는 만들어져 갔다. 당시 이 일에 가장 앞장섰던 분은 김헌수 목사님(현재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이었고, 나도 옆에서 같이 도우며 간사 일을 했었다. 그렇지만 기독교 학문의 방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고민은 필자가 번역한 <창조•타락•구속>(IVP, 1995)의 역자 글에 아래와 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가 이 책의 원서 Creation Regained를 처음 접한 것은 기독교적 학문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학문도 기독교적으로 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론이 기독교적이며, 그리스도인이 학문을 연구할 때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하는지는 여전히 가닥이 잡히지 않는 문제였다. 상황을 그렇게 인식한 당시의 과학 연구 모임 참석자들은 먼저 기독교적 학문을 위한 어떤 ‘기초’를 다져야 하겠다는 데 동의했고, 그래서 원이삼(Wesley Wentworth)에게 소개받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렇게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 연구 및 활동의 기초가 되었다. 청년들이 주축이었던 ‘기독교학문연구회’가 어떻게 현재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결성되고 발전해 왔는지는 우리 ‘동역회’ 연혁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단체의 출범에 내가 관여한 사실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단체는 ‘기독교철학회’이다. 때는 1998년 봄이거나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는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청년’(YB)들과 ‘장년’(OB)들이 서로 합쳐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정관을 제정하는 등 체제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학술단체로 출발한 지 수년이 지난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철학자라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도 ‘기독교철학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나에게 “날짜를 정해서 한 번 모이자고 제안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홀연히 났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편지를 드려 ‘기독교철학회’를 창립하려고 하니 아무 날 어디에 모이자고 공지를 했다.(순전히 기억에 의존한 기술이라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모였던 분들이 ‘기독교철학회’ 창립을 하였다. 당시 작성한 회원 명단에는 손봉호 교수님을 비롯해 김영한 교수님, 강영안 교수님, 신국원 교수님, 이승구 교수님, 최태연 교수님, 하종호 교수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후 ‘기독교철학회’는 매년 학회를 열고 학회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내가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어떻게 추구해 왔는지, 어떤 점들을 고민하는지를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회이다. 구원이란 죄와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아들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 나라 백성의 삶이란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일의 일차적인 현장은 교회이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에 분열이 발생하고 그뿐 아니라 팬데믹으로 예배와 성찬이 정상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재림 전까지는 여전히 죄와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은혜를 구하게 된다.
그동안 진리, 논리, 감정 등 몇 주제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다루어 논문을 써 보았다. 쉽지 않은 작업임을 매번 발견한다. 기독교적인 연구임을 자임하려면 말씀의 빛이 거기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교훈을 잘 알아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에 어떤 식으로 관련시켜야 하기에, 성경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인문학,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성경 연구가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성경 지식은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이 내 개인적인 삶에 국한된 것이라면 객관적 논증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나의 철학적 주장이 철학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성경의 가르침도 학문적 논의에 가져올 때는 신학의 언어로 표현되어 합리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을 연구하여 석사와 박사 논문을 썼다. 비트켄슈타인은 학문적으로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고 허세가 없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존경하지는 않는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고, 그의 삶을 모범으로 삼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철학자에 대한 연구는 그래서 이어나가지 못했다. 최근 한 신학교에서 해석학에 대한 강의를 맡으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중요성과 기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현대 해석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고, 성경해석학자들에 의해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일반 은혜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방 사립대의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학생들을 충실히 가르치면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가정을 돌보고 연구를 한다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지나는 동안 어느덧 정년이 몇 년 앞으로 다가왔다. 연구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학회나 ‘동역회’에서 얼마나 봉사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충성스럽게 맡겨진 일을 다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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