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얼마 전 교내 그리스도인 대학원생 모임에서 주최한 그리스도인 교수님과의 만남 행사에 참여했었다. 질의문답 시간에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은 어떻게 대학원 전공의 길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신하셨어요?” 답변은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답변을 듣고 “나라면 뭐라고 했을까”를 생각했다. 교수님 말씀이 내게도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그때는 잘 몰랐다.”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선교 단체 소속으로서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충만했던 학부 기간을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하니 무거운 물음표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학부 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이른바 ‘좋은 신앙인’의 모습은 더 이상 대학원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하나님은 세상 일의 사명도 주신다고 했는데, 주어진 일상 안에서 연구도 충실히 하고 하나님과 교제도 충분히 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연구실 동기들은 교회도 안 가고 성경도 안 읽고 연구만 하는데, 그리스도인인 내가 그 친구보다 연구를 잘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맞는 삶일까? 일은 지금 이렇게 밀려 있는데, 내가 말씀 보는데 원하는 만큼 시간을 쓰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좋은 일일까?” 하는 고민으로 갈팡질팡했다.
물음표의 행진은 교회 안에서도 이어졌다. 학부 때는 캠퍼스 선교 단체 안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비슷한 신앙의 모습과 색깔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지냈는데, 대학원에 오면서 교내 대학교회로 예배처를 옮기고 나니, 여러 가지 색깔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임 시간에는 말씀 중심으로 보내야 하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놀려고만 하고 수다만 떨려 하지?”, “모임은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하는데 세상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서 해도 되는 걸까?” 등의 생각으로 마음 한편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 때문에 교회 리더에게 찾아가서 “우리 교회는 왜 이렇냐” 라고 따지고 어떤 날은 교내 수요 채플에 참여했다가 메신저의 설교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 가운데 “내가 맞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연구실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바르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불신자 선배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 믿는다고 특별히 더 나은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연구의 오랜 슬럼프를 겪으면서 “내가 좋은 신앙인 되려고 말씀 보고 좋은 사회인 되려고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할 수 있기 위해서 말씀 붙잡고 살 수밖에 없고 하나님 잘 믿기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교회에서도 카페에 가고, 계곡에 가서 놀고, 제주도도 놀러 가고, 이렇게 열심히 노는 와중에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며 “신앙이라는 게 주님이 먼저 가시면 내가 따라가는 것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시간들 모두가 주님의 크심을 알아가는 과정,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훈련의 기간이 되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찾아오자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교회와 예배의 모습도 불가피하게 달라졌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 교회 소모임에서 기타 치며 찬양하는 내 모습을 보면 다시 저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를 해석하는 다양한 생각들은 내게 아직 혼란스럽다. 어떤 이는 ‘코로나 19’ 사태를 교회의 본질인 ‘함께 함을 방해하는 마귀의 시험’으로 보거나 교회 예배를 금지하는 정부의 정책을 세상의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본다. 어떤 이는 ‘코로나 19’ 사태를 하나님의 징계로 보고,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기간으로 보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 청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서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제가 어려운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주가는 매일 최대치를 경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몇 주 만에 몇억씩 오르는 집값 앞에서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우라"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코로나 19’ 사태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정답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다만 주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하며 기도드릴 뿐이다. 어쩌면 “신앙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 “교회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우리 각자 앞에 던져진 것만으로도 이미 주님의 뜻이 이뤄진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늘 물음표로 초대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크심을 서서히 드러내시는 것은 아닐까 한다. 7년 전 캠퍼스에서 석종준 목사님을 통해 처음 창조론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생명과학부 학부생으로서 우연히 그 모임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참석했었다. 그때는 생물을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창조와 진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년을 더 공부한 지금도 더 알게 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답 찾기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모든 답을 당장 알려 하기보다, 주님께서 이미 존재하게 하신 생명을 정하신 때를 따라 그저 조금씩 알아가고, 살아가는 동안 주님만을 조금씩 날마다 더 알아가며 찬송하며 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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