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코로나 19’ 시대와 ‘공적 신앙’의 회복
<공적신앙이란 무엇인가 : 광장에 선 기독교> / 미로슬라프 볼프 /김명윤 옮김 / IVP / 2014.
‘코로나 19’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사적이어야 하는가? 공적이어야 하는가?” <광장에 선 기독교>(2014)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으로 안내하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저자 볼프(Miroslav Volf, 1956~ )는 오래전부터 공적 신앙 관련 저서를 꾸준히 집필해 온 학자이다. 그는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예일대학교 교수와 예일 신앙과 문화 연구소(Yale Center for Faith and Culture)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에도 이미 여러 저서가 번역되어 있다. <베풂과 용서>(복있는사람, 2008), <배제와 포용>(IVP, 2012), <기억의 종말>(IVP, 2016), <인간의 번영>(IVP, 2017) 등이다. <광장에 선 기독교>는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크게 1부, 2부로 나뉜다. 1부 ‘신앙의 기능장애에 맞서’(1-4장)는 몇 가지 ‘신앙의 기능장애’가 어떤 방식으로 출현하는지, 또 어떻게 그에 맞서야 하는지를 밝힌다. 2부 ‘참여하는 신앙’(5-7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다른 신앙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적 지혜를 제공한다.
볼프는 이 책에서 단언한다. “신앙인은 각자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이상을 공적 영역에서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15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공적 영역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다만 올바른 공적 신앙의 실현을 위해 두 가지를 강력히 경계한다. 하나는 특정한 자기의 신앙적 입장을 절대화하여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려는 ‘전체주의’이고, 또 하나는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의 목소리를 일체 배제하려는 ‘세속주의’이다. 왜냐하면 ‘전체주의’와 ‘세속주의’라는 이 양극단은 모두 ‘신앙의 기능장애’ 현상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볼프에 따르면, 기독교는 ‘예언자적 종교’이며, ‘상승’(ascent)과 ‘회기’(return)의 작동 구조를 반드시 갖는다. 우선 ‘상승’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경험 속에서 메시지를 받는 ‘수용적 사건’을 말한다. 그다음 ‘회기’는 상승 경험의 당사자가 세상 한복판에서 그가 받은 메시지를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창조적 사건’을 말한다.
문제는 이 ‘상승’과 ‘회귀’ 과정 모두에서 기능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승’ 과정의 기능장애는 가령 모세와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처럼, 메시지 수용자가 하나님과 만남 자체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채, 받은 메시지를 자신이 정해놓은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축소시킬 때 발생한다. 이때 당사자들은 받은 메시지를 종종 십자가 복음이 아닌, 자기 욕망 실현을 위한 파괴와 폭력의 도구로 오용한다. 한편 ‘회귀’ 과정에서의 기능장애는 메시지 수용자가 그것을 세상에 적용할 때, ‘신앙의 나태함’이나 ‘신앙의 강요’를 통하여 발생한다. 신앙의 나태함은 당사자가 메시지의 적용 과정에서, 자기가 속한 체계에 매몰되어, 악의 유혹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짐을 허용하는 것이다. 가령 히틀러 체제 속의 홀로코스트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나 18세기 영국의 노예무역 상인 같은 경우이다. 이와는 반대로 신앙의 강요를 통한 ‘회귀’ 기능장애는 당사자가 메시지를 자기 욕망과 분리하지 못한 채, 세상 변혁의 실현을 조급히 도모하려는 강박관념에 기인한다. 이때 성경 말씀의 적용은 당사자의 어떤 욕망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된다.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의 정치참여 성격이 이에 해당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겉으로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지, 실제로는 세상에 작동되고 있는 도덕적, 합법적 영역의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간과한 채, 폭력과 불법조차 오직 특정한 욕망의 관철을 위해 용인하면서 치닫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볼프는 우리가 신앙의 기능장애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성경적 ‘인간 번영’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눅 10:2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인간 번영’을 원하시며, 그것의 관건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전 1:30, 갈 2:20). 볼프는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을 고쳐야 한다는 책임감’과 ‘공공선을 통한 섬김’이라는 소명이 주어져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요 20:21). 또한 “다원적인 세상에서 모든 종교의 주된 사명은 사람들이 보잘 것 없는 희망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147면).
‘코로나 19’ 시대 한복판에서, 볼프가 이 책에서 안내하는 논지를 따라가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이미 작동되고 있는 도덕과 사회적 약속을 배제한 채, 오직 자기 방식의 신앙 실천을 고집하거나 강요하려는 ‘전체주의’ 입장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정교분리를 빌미로 그 대척점에서, 기독교의 공적 역할을 일체 간과하는, ‘세속주의’ 입장도 결코 대안이 아님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가 대중의 광장을 떠나거나 밀려나도 광장은 비지 않는다. “종교가 광장을 떠나면 세속주의가 궁극적(overaching) 관점의 광장을 차지하게 된다.”(177면). 이렇듯이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정체성 문제에 도전받고 있는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공적 신앙’의 회복을 위한 값진 지혜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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