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이 영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를 통해서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세상이 현실적으로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은 세상의 법과 제도를 통해서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40)라는 ‘이중 대계명’을 명하신다. 여기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되는 ‘자기 사랑’이라는 세 가지 사랑이 들어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가 ‘이중 대계명’ 중 ‘하나님 사랑’에 해당한다면,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법과 제도는 ‘이중 대계명’ 중 ‘이웃 사랑’, 즉 ‘자기를 사랑하면서,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이 움직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률은 ‘민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민법을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서로 다투는 이기주의적 욕망의 보장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이 경우 민법은 기독교 신앙과는 무관한 ‘자기 사랑’과 욕망의 세속적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지만, 모세 율법과 함무라비 법전 이후 수천 년간 축적되고 체계화된 민법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의 선입관과는 달리, 민법 자체가 사람의 ‘자기 사랑’(물권법)과 ‘이웃 사랑’(채권법)을 양대 기둥으로 하여,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 간의 ‘갈등과 협력’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민법의 ‘물권법’(物權法)은 사람들이 소유권을 확보해서 나와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사랑’의 기본 방법을 제시하고 보장한다. 그런데, 민법의 ‘채권법’(債權法)은 사람들이 타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웃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 대가를 지급받는 ‘이웃 사랑’의 내용과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니 민법 중 물권법은 자기 사랑의 법이요, 채권법은 이웃 사랑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실의 민법은 “인간이 자기 사랑의 추구(물권법적)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고,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이웃 사랑의 행위(채권법적)를 해야만 한다”라는 인간 생활의 기묘한 모순적 본질을 뚜렷하게 제시(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에는 ‘이중 대계명’의 내용인 하나님 사랑과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한 중요한 기능과 역할들이 함께 들어있다. 상품의 제조업과 유통업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에게(하나님 사랑) 의(衣)와 식(食)과 주(住)를 제공해서 나의 생존(자기 사랑)과 이웃의 생존(이웃 사랑)을 함께 가능하게 해주는 결정적 역할이 있다. 운송업, 의료업 등 서비스업 또한 타인을 도와서(이웃 사랑) 그 대가로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리는(자기 사랑),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의 종합체이다.
그 누구도 자기 사랑만 하고는 살 수 없지만,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 거룩한 그리스도인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만 사랑하면서 살 수는 없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자기만 사랑하면 이웃에 대한 서비스가 제대로 될 수 없고, 거꾸로 이웃만 사랑하고 자기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 나와 가족이 먹고살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직업 활동은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 자기 사랑과 자기 부인의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 속에 있다.
대부분의 직업은 자기 사랑이 일차적 동기이고(소득과 생계), 자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단으로 이웃 사랑의 행위(제조업과 서비스업)가 이차적으로 결합된다. 그러니, 각종 직업과 생계 활동을 긍정적인 선으로만 보는 것도 오해이고 부정적인 악으로만 보는 것도 오해이다. 직업의 목적은 성악설적인 자기 사랑이지만 직업의 수단은 성선설적인 이웃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업과 삶 속에서 자기 사랑의 폭주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자기 사랑 속의 악을 알아야 하고, 이웃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웃 사랑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죄를 짓고(자기 사랑), 교회에서는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자기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혼합), 여유가 있으면 구제의 자선을 행하는(부업적 이웃 사랑)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세상과 직업은 ‘자기 사랑’이 압도하는 영역으로 방치하고 ‘이웃 사랑’은 임의적인 선택과목처럼 취급함으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도 자기만 사랑하고, 교회에서도 자기만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 속의 삶, 직업과 법 제도 속에 들어있는 이웃 사랑의 본질적 요소를 경시하거나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삶은 제도적으로 100% 이기적일 수가 없는데, 신앙을 통해 자기 사랑만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보다도 조금 더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사랑을 위해서는 이웃 사랑을 해야만 하고,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자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예수님이 주신 두 번째 큰 계명의 참으로 신비한 실천 방법이자 기독교 신앙의 오묘한 성육신이 아닌가? 결국 우리가 “하나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된 기도를 행하려면, 우리의 구체적인 직업과 생계 활동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 간에 계속되는 인생의 씨름들을, 우리 신앙 활동의 핵심적인 본체로서 인식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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