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의 아버님은 차례와 제사를 지극 정성으로 챙기셨고 어머님은 무당 굿에서 영적 위안을 찾으시는 분이셨다. 이런 분위기 탓에 어려서부터 나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배신이다 싶어 기독교는 꺼려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기독교가 말하는 영의 세계는 제사나 굿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상함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모교 연세대학교의 교훈은 과학이 진리라 생각하던 물리학과 학생인 나에게 “도대체 기독교 진리는 어떤 것이기에 우리를 자유케 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군부독재에 자유를 빼앗겨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 없다고 나를 속이며 비겁하게 살고 있었다. 그 비겁함이 부끄러웠던 나는 독재에 맞서던 교회 그리고 그 용감함의 이유라는 십자가의 고상함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고상함에 매혹될수록 나는 더욱 부끄러웠다. 사실,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것도 그 부끄러움이 지워준 빚을 갚아보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 만큼 나이에 안 어울리는, 기특한 동기에서였다.
미시간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던 중 갑자기 내게 들이닥친 ‘찬송가 부르고 싶은 갈증’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그저 주께서 “너 노래 좋아하지?”라고 꼬신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찾아간 앤아버 한인 성서교회에서 나는 송인규 목사님을 만난다. 우리나라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한 축을 이루어 오신 송 목사님을 만나 초신자에서 성경공부 인도자로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
이제는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 막 시작된 ‘기독교학문연구회’와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 두 단체의 소식을 멀리서 듣고 가슴 두근거렸다. 코스타를 몇 번 참석하고 기독교 세계관 서적들을 읽으며 조금씩 믿음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깊은 매력으로, 또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유학의 이유였던 마음의 빚을 갚을 길도 어쩌면 기독교 세계관 공부와 실천을 통해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공학은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지?”라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졸업 후 1년 간의 크램슨대학교 교수 생활을 거쳐 포항공대에 오게 되면서, 나는 “공학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아보자”라는 숙제를 여전히 손에 들고 귀국한다.
포항공대에서는 더 많은 논문, 더 큰 연구비, 더 빠른 진급의 추구가 내 삶의 리듬을 빠르게 재촉했다. “주님, 어서어서 진급해야 주님 일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라며 자꾸 늦어지는 진급에 애를 태우며 지냈다. 그러다가 홀연히 닥친 정교수 진급을 마치던 날, 주께 감사 기도를 올리던 나는 화들짝 놀란다. “나를 위해 모든 것 내려 놓겠다더니, 진급이 그리도 걸리던?”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예수 믿고 벗어버린 줄 알았던 오래전 부끄러움의 짐을 다시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경험 전후 즈음에 참여한 ‘크리스챤과학기술포럼’에서 나아갈 길을 찾던 중 나는 ‘적정기술’을 만난다. 적정기술을 성경이 말하는 “과부와 고아를 위한” 기술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전파했다. 또한 적정기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해도 추구해볼 만한 것인지라 일반인들에게도 전파하고자 ‘나눔과기술’,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적정기술학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적정기술을 추구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공학 분야에서 드러내는 일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이 일을 위해 사기업은 ‘CSR’(기업사회책임)과 ‘CSV’(공유가치창출)에 매진하도록,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는 ‘ODA’(공적원조) 분야에서 ‘착한 기술’, ‘따뜻한 기술’, ‘회복된 기술’을 사용하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오래전 부끄러움 가운데 진 빚을 조금씩 갚고 있는 심정이다.
성경에 쓰여진 바 없으니 “하나님 나라에서는 과학 기술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확실히 답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이 질문은 이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질문이다. 웨슬리 선교사님 소개로 만난 손화철 박사님을 통해 입문하게 된 기술철학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아 기술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기술신학도 새로 접하게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직도 하나님 나라의 과학 기술에 대한 확실한 모습을 그려보진 못했지만 몇 가지 힌트는 찾은 것 같다. 기술은 스스로 말미암으시는, 곧 자유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땅을 경작하는 농업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사역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타락 전 에덴동산에서처럼 우리는 경작할 것이다.
요즘,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 그리고 ‘오픈소스’ 기술과 ‘리빙랩’에 갖게 되는 나의 관심도 사실은 모두가 땅을 경작할 것 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과학 기술을 나누는 모습은 이 땅에서 이루어 보기 위해 노력해 볼 만한 하나님 나라의 한 자락이라 생각한다. 물론 주님 오시기 전에 그런 모습을 어찌 우리가 이루어 내겠는가? 그저 그날에 우리 기쁨이 크기 위해 마땅히 가질 목마름을 우리 안에 온전히 가꾸어 보려는 것 뿐이리라.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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