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사방이 막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보스턴 유학 1-2 년 차, 나는 들어가고 싶던 연구실들에 연이어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다리에 힘이 풀려 좌절했다. 소속 연구실이 없어도 학교 등록금은 내야 했고 조교 일까지 하게 되니 시간에 쫓겨 비좁은 강의실에 쪼그려 누워 자야 했던 날들. 긴장한 탓에 바나나만 먹어도 소화가 안 되어서 구토를 했고, 그 와중에도 연구실 후보생 발표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미소를 장착하고 들어가 나를 어떻게든 증명해내려고 애쓰며 토론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설레는 꿈을 안고 떠난 유학인데,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아 슬펐다. 성실, 끈기, 열정, 인맥 등 나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도교수님과 미팅을 했다는 학생들이 부러웠고, 연구실 동료와 수다를 떤 학생이 부러웠다. 학생 비자로 유학을 왔는데 소속된 곳이 없으니 허망하고 외롭고, 또 두려웠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힘든 상황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유년 시절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을 당할 때도 활기찬 성격으로 축구를 하며 동급생들의 인기를 얻어 이겨냈고, 고등학교 입시 시절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에도 독하게 공부해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 고난의 순간에 그 고난을 끝낼 또 다른 길을 찾아 그 자리를 떠났던 셈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이러한 감각을 ‘회복 탄력성’이라 부른다.
우리의 이 ‘회복 탄력성’은 때로는 주님과의 만남을 늦추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보스턴에서 사방이 막힌 환경을 통해 나의 전적인 무능과 이런 내 삶의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고난 중에 말씀을 따라 좁은 길 걸으신 예수님과는 달리 편한 길만 걸으려 하는 자기중심적인 삶, 예수님이 한 사람 영혼에 관심을 보이며 섬기실 때 나는 내 생각만 하며 걱정에 젖어 사는 삶, 성령의 음성에는 귀 기울이지 못한 채 지금 이 고난의 순간 내게 남은 카드는 무엇인지 머리부터 돌려보는 삶. 그러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헬스장에서 기분 전환을 하고 “좋다, 스트레스 풀린다” 하며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포인트를 놓친 삶.
짧았다. 사방이 막힌 밤. 바로 그 깜깜한 밤에 주님은 바울이 생각지도 못한 저 바다 건너 마케도니아 땅을 환상 중에 보게 하셨다. 왜 이 비전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곳에 가야만 보이는 걸까. 우리는 왜 자꾸만 고난 중에 회복만 꿈꾸며 나와 내 주변의 늦춰지는 구원은 생각 못하고 나만의 욕심에 갇혀 사는 걸까. 같은 밤도 이렇게 다른 밤일 수 있는데, 내 생각이 다 무너질 때까지 이토록 기다리신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행사가 아닌 예배, 다수가 아닌 한 사람에게 집중하라”라는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감겼던 두 눈을 번쩍 뜨고 내 믿음의 처참한 현주소를 직시하며 그간 구원을 늦추며 뭉그적거렸던 삶에서 돌이켜, 내 삶에 허락하신 한 영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열심히만 살던 똑똑한 바보의 삶에서, 방향이 분명한 ‘단순하고 깊은’(simple and deep)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이 최소한의 순종은 하지 않고 자꾸만 십자가에서 내려와 버리는 나의 이 '웃픈' 귀소본능을 버리기로 했고, 내가 마련한 피난처에서 안전하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들쑥날쑥,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에게 오직 유일한 희망은 큐티와 공동체였다. 매일의 말씀으로 내 욕심을 가지치기하고, 중한 일을 급한 일들로부터 분별해내어, 날 기다리는 한 사람 (친구, 가족, 지체, 연인) 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섬기며, 다 함께 살아나는 삶이 곧 거절의 복을 누리는 삶임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작년 1월, 정말 기적처럼 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기간도 딱 맞아떨어져 ‘우리들교회’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신음하는 유학생들을 기도 중에 생생히 보여주셨다. 주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은 사라진 채, 실적과 성과로 평가받는 유학지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방황하는 내 주위 사람들을 기억나게 하셨다. 모두 종류만 다를 뿐 상황은 똑같은 고난 가운데 있었다.
그때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갑자기 카톡이 왔고, 요새 힘들다며 서울대 & MIT 엘리트 동생들이 전화를 해왔다. 그렇게 보스턴 유학생분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 귀국하신 분들과 ‘QTin’이라는 큐티 교재를 가지고 매주 목요일 말씀 묵상하는 모임을 한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간다. 나의 마케도니아는 바로 이곳이다.
우리는 무능의 순간에 좌절하지만, 바로 사방이 막힌 이 환경에서 주님의 숨겨진 의지를 발견하게 되는가 보다. 주님의 관심은 고난의 끝을 알리시는 데 있기보다 그 가운데 나를 만나 효과적인 설득으로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 동역자들과 함께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에 있나 보다. 용기도 외롭지 않아야 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니 외롭지 않고 기쁘다. 성령의 효과적 설득에 이끌려 예수님이 걸으신 좁고도 기쁜 길을 따라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남은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껏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과 늘 눈물로 애통히 기도하시며 모두가 살아나는 사역에 힘써 주시는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과 우리들교회 공동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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