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Bonhoeffer : Agent of Grace> (2000, 에릭 틸 감독)
영화가 제시하는 시대의 양심
영화 <본회퍼>는 신앙과 괴리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본회퍼(1906-1945)라는 신앙인, 목사, 교수의 역할을 한 몸에 지고 살아가야 했던 인물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복음에 순종하려 했던 한 순결한 신앙을 보게 된다. 신앙인이라고 모두 결단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 때로는 다수는 세상과 불의한 권력에 붙어서 야합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죄인된 인간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간의 보편적 양심, 신앙과 괴리되지 않는 삶의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는 이렇게 고백했을 것이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10).
나치라는 시대 상황
본회퍼 목사는 나치시대(1933-1945)라는 난세를 살았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민족적 열등감을 만회해 보고자 바이마르 공화국을 출범시켰으나 이 정치적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국민들은 ‘위대한 독일 재건’을 일으킬 영웅을 원했다. 마침내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나치제국이 세워졌다. 여기에 복종하고 야합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갔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을 ‘희생양’(Scape Goat)으로 무차별적 만행을 저지른다. 본회퍼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 신앙이 뿌리 깊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독일에서 어떻게 이런 정권이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본회퍼의 해답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의 신학계는 이미 나치주의자들 손에 넘어가서 비복음적인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본회퍼는 목회자양성소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나치는 그마저도 폐쇄시켰다. 이럴수록 그의 양심적 행동은 점점 강해졌다.
내 양이 조국에 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며, 미국 이민 온 독일 교인들을 위로했다. 독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이들이 귀국을 만류했다. 돌아가면 나치의 탄압을 받을 것이므로.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양이 독일에 있는데, 제가 어떻게 여기에 머물겠습니까!” 독일로 돌아온 후 조국에서 나치의 감시를 받는 일상을 살게 된다. ‘목회자긴급동맹’, ‘고백교회 운동’으로 반나치 활동을 계속하는 본회퍼. 그는 이미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다.
뜻하지 않은 만남, 그리고 약혼
전쟁이 깊어진 가운데 오래전 교인이었던 한 노부인을 방문했다. 그때 알게 된 충격적인 소식, 할머니의 남편과 아들이 모두 전사했다는 것. 나치는 조국을 위한 헌신이라고 미화했지만, 나치가 일으킨 무모한 전쟁에 끌려 나가 숨진 경우였다. 본회퍼는 나치의 전쟁이 결코 합리화할 수 없는 사탄적 행위임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손녀가 외로이 지냈는데, 그녀는 예전에 본회퍼 목사가 입교 공부를 시킨 학생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회퍼는 갓 성인이 된 이 여인(마리아)과 약혼을 한다. 마리아는 본회퍼가 베를린에서 수감된 감옥을 찾아가기도 하였으나. 본회퍼가 체코 국경의 강제수용소로 이감된 이후 그곳까지 면회를 갔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패전을 인식한 히틀러는 결국 긴급명령을 내린다. 본회퍼에게 사형 집행이 행해졌다.
암살단 가입
목사가 어떻게 암살단에 가입할 수 있을까? 본회퍼는 처음에 가입을 거부했다.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매부는 본회퍼에게 사진을 내보였다. 유대인 학살과 참상을 고발하는 증거였다. 미친 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당연히 그를 끌어내려야 한다. 주저할 것이 없었다. 목사로서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한 것은 직접 총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 기독교와 실상을 해외에 알리고 독일의 정통성이 나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계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활동에 있었다. 그는 해외 지도자들과 긴밀히 이런 내용을 교류했다.
순례의 마지막 길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발키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히틀러는 광적으로 가담자들을 색출하게 했고, 결국 본회퍼의 이름도 드러났다. 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들어서자 독일군의 패전 기운이 짙었다. 히틀러와 나치당 지휘부는 패망을 인정하지 않아 막대한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히틀러는 무차별적 살인을 명령했다. 본회퍼 목사는 동지들과 베를린에서 중부 독일에 있던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로 이감되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했던 수용소에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히틀러의 특명을 집행하려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기 바로 한 달 전의 일이다. 이렇게 본회퍼는 묵묵히 자신의 신앙대로 주님 곁으로 갔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aechten)>는 본회퍼 목사가 옥중에서 약혼녀 마리아에게 보낸 편지의 시(詩)다. 우리는 가장 난폭한 권력 앞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양심과 용기를 끝까지 놓지 않은 본회퍼 목사에게서 결연한 신앙 각오, 신앙과 삶의 일치를 배운다. 영화 <본회퍼>는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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