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고통받는 땅아, 너는 빛으로 일어서라> 전은 북한 인권의 실태를 알리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뜻 있는 행사였다. 이 전시에는 ‘엠카라’(MQARA)라는 단체에 속한 김보경, 김윤경, 김지란, 윤나리, 이미진, 장성숙, 장윤희 등 7인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언젠가 맞이하게 될 북한 주민의 자유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화폭에 나타냈다. 이 작가들은 “이 작은 움직임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북한의 벽을 무너뜨리고, 북한이 자유의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윤나리 <기다림>(2020)
젊은 작가들의 발언은 최근 신앙과 괴리된 그리스도인의 범죄로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킨 것과 오버랩되어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문제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세상을 향한 욕망 앞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뒷전이 되어버렸고 일반인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모럴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력 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 양상은 예술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공연히 ‘오해’를 사거나 편견을 지닌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미술 담론을 주도하는 기관이나 매체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대학에서도, 저널에서도, 화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종교적인 작품이 언급될 때는 그것이 ‘스캔들’과 관련될 때뿐이다. 대학 강단에서조차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 결부된 종교를 1년 내내 말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미술에서는 기독교 담론이 공공 영역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일상의 삶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밀접히 연관된 종교를 현대미술에서 언급할 수 있는 지점을 갖지 못한 것은 부조리하다”라고 했고, 존 버거(John Berger)는 “예술작품이 송두리째 거짓 종교성의 분위기 안에 봉인되어버렸다”고 일갈하였다. 신앙을 삶의 근간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기독교적 ‘문화의 돌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것은 우리 일상에 신앙과 삶의 ‘무서운 괴리’가 침투해 있음을 방증한다. 신앙과 삶의 분리는 기독교 세계관을 세속적 관점으로 대체하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공허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는 미래의 사람들임을 망각할 때 세상의 옷이 더 어울리며 좋게 느껴지는 셈이다. 팀 체스터(Tim Chester)가 말하였듯이 세상과 같아질수록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적어질 따름이다. 세속주의를 거스르며 ‘문화명령’을 이행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야할 삶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세상에 눈을 돌려보면 숱한 과제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북한의 인권 문제부터 동성애 문제, 무신론자들과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협공,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환경파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기아 문제와 낙태죄 폐지, 세계 곳곳에서 저질러지는 악행 등등. 이런 과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것은 문화적 회복의 과업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책무이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그러나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현재 자리에서 기존의 구조들을 유지하며 망가진 것들을 고쳐나가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지란 <모든 문물은 씻겨지리라>(2020)
M국의 J 작가는 실력을 인정받는 전도유망한 작가이다.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J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일렬로 서 있는 군중같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예배하는 사람들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는 인품과 실력 면에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주위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다. 얼마 전 공권력을 동원해 지하교회를 급습, 집기를 몰수하고 본당을 폐쇄하는가 하면 지방의 교회 목사 부부에게 ‘국가 전복 혐의’를 뒤집어씌운 마당에 J작가 역시 정체성이 밝혀지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의 걸음은 얼음판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다. 개인의 신앙이 무지막지한 공권력을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J 작가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J 작가와 같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아름다운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축복받고 죽으면 천당 간다는 식의 기복신앙에 안주하지 말고 천국 시민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길 잃은 자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본분을 망각하지 말고 성실히 수행해야겠다. 하나님 나라는 그 백성들의 변화된 삶과 교회를 통해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한다. 특별히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국이 산산조각 났을 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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