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루터와 흑사병
주도홍 (前 백석대 역사신학 교수)
1527년 7월 루터가 사는 비텐베르크에도 흑사병이 찾아들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피난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피난은 성주들의 명령을 따라 행해졌기에 ‘기독교사회’(Corpus Christianum)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목회자들은 쉽게 행동할 수 없어 영적 지도자 루터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함께 고민하며, 본인 역시 질병으로 힘든 중에도 1527년 7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3개월에 걸쳐 쉬엄쉬엄 글을 썼는데, “기꺼이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라는 글이었다. 루터의 이 글들은 신앙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고, 사랑이 고난에로의 자유를 결단하게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루터가 서두에서 인용한 성경은 고전 1:10, 고후 13:11, 빌 2:2의 말씀이다. 그중 고후 13:11의 말씀은 “형제들아,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인데, 바로 앞 고후 13:10의 말씀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와 함께 생각할 때 루터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여기서 루터가 강조한 단어는 겸손, 낮추심, 학습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향한 바른 태도를 두 가지로 말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반하는 경우, 즉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혀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 복음을 자신이 부인해야 경우인데, 이때는 마땅히 죽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마 10:33; 10:28). 다음으로 루터는 영적 직분을 가진 설교자나 목회자가 흑사병 같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라도 주의 명령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삯꾼은 늑대가 달려들 때, 양들을 버리고 본인이 살기 위해 도망치나,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요한 10:12). 또한 루터는 마태복음 25:43의 “내가 병들었을 때 ..... 너희가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주의 음성을 들려준다. 남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고, 또는 이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생명을 위해 죽음(Tod)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불의가 아님을 많은 성경 구절을 가져와 제시한다.
루터는 에스겔 14:21을 들며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네 가지 중한 벌인 흑사병, 기근, 전쟁, 사나운 짐승을 열거한다. 이러한 재앙들이 하나님이 내린 벌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루터는 묻는다. 정부는 여러 재단, 양로원, 구호시설, 병원 등을 통해서 고난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좋은 그리스도적 사랑을 넉넉히 실천해야 한다. 이런 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경우라면, 그리스도인이 나서서 친히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라는 말씀에 응하는 것이다. 이웃이 이러한 환난을 만났을 때 모른 체해서는 안 되고,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루터의 태도는 그가 친히 흑사병 환자를 본인 집에 들여 치료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귀는 틀림없이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 공포,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자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정말 사악한 못된 마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살해하려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놀라고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 겁을 먹게 될 때, 마귀는 기뻐하며, 우리를 참혹하게 만들어, 우리 삶에 있어야 할 안식과 평화를 앗아가, 결국 우리의 삶이 더러운 오물로 넘치게 만들어버린다!”
루터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모른 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 환난 중에 있는 모든 이를 위로하는 하나님의 그 찬란한 능력의 말씀과 약속을 견고히 붙들어야 한다. 아무도 그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에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루터는 순전한 사랑의 섬김과 희생적 봉사에 강조점을 두었다. 루터에게 경건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Gottesdienst)이고, 그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란 구체적으로 병든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이처럼 루터는 순전한 사랑의 섬김과 희생적 봉사에 강조점을 두었다. 루터는 어떻게 모든 흑사병과 모든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겠는지 물으며, 그것은 병자를 위한 그 어떤 보호자도, 의사도 없이 방치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루터는 흑사병의 환난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로하고 섬기고 치료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 거기에서 말씀 가운데 있는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게 된다고 가르친다.
루터는 ‘왼편 죄’와 ‘오른편 죄’로 나눈다. ‘왼편 죄’는 이웃을 돌보지 못한 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것, 즉 방치와 피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 죄다. ‘오른편 죄’는 이웃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 어떤 수고도, 치료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병이 퍼진 지역이나, 사람들을 멀리하지도 않은 채, 방탕하고 유희를 즐기면서 용감한 체하는 죄다. 루터에게 바른 신앙은 내 이웃이 어떤 모습으로든지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그에게 가서 돕는 것이다. 그리고 흑사병에 걸린 사람도 이웃을 생각해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고, 사람들을 위해 가까이 가서는 안 되고 조심스럽게 피해야 한다. 흑사병을 너무 두려워하고,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버려둔 채 도망한다면, 또는 맹목적 만용으로 방역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했다. 루터는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이러한 말씀을 설교하고, 영혼의 위로자로서 부름을 받아 옳게 처신할 것을 소망했다.
* 이상은 저자가 <신앙세계>(2020. 4월호)에 게재하었던 동일 제목 논문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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