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위기 가운데 오히려 더 빛나는 존재들이었다. 2세기의 안토니우스 역병, 중세의 흑사병 등 여러 질병들이 인류를 강타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 속에서 타인을 향한 돌봄과 헌신적 섬김을 통해 이교도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전염병이 끝난 뒤 기독교는 오히려 크게 부흥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한 일들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현재의 고통을 넘어 미래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이 ‘코로나 19’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19’의 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일상의 기준, 즉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더 높은 고급 차원에서 뉴노멀 시대를 대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교회는 뉴노멀 시대에 더 빛나는 공동체로, 희망의 공동체로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신앙을 지킬 뿐 아니라 다시 세상의 희망이 되기 위해 진통을 감내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뉴노멀 시대에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 위기는 무엇인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도전과 위기를 기회와 희망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구해야 한다. 필자는 지역교회의 목회자로서 뉴노멀 시대의 목회적 위기와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한국의 지역교회들은 ‘코로나 19’의 상황 속에서 어떤 위기를 경험하고 있을까?
첫째, 전통적 신앙 양식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주일’과 ‘예배당’은 전통적 신앙 안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신앙 양식의 키워드였다. 그러나 비대면 온라인 예배의 도입으로 예배의 장소가 절대적 양식에서 상대적 양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도전받게 되었다.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의식과 태도를 가지고는 뉴노멀 시대의 예배를 해석할 수도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둘째, 다음 세대의 위기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거의 1년 반 가까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인격이 형성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교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성도의 교제와 연합의 위기이다. 점심 식사, 소그룹 모임 등 성도의 친교의 채널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성도들 간의 교제와 연합의 끈이 느슨해지고 있다.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영적, 정서적 외로움과 갈급함을 토로하는 성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넷째, 헌신된 일꾼들의 위기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교회는 여전히 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예배만 드리고 바로 귀가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의 손길은 점점 더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러한 위기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그중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코로나 19’는 우리 자신을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사회적 관계망이 느슨해지며 홀로 지내는 물리적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분주하게 지내던 때는 반추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특별히, 마스크 착용, 발열 체크, 손 소독,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코로나 19’의 방역수칙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적 성찰을 위한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둘째, 전통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교회는 성전예배만을 고집하지 않고, 온라인 방송시설을 갖추고 실시간 혹은 녹화 방송을 통해 대안적 예배 방식을 찾고 있다. 성도 양육과 소통의 측면에서는 줌(zoom)을 통한 새로운 사역의 장이 열리고 있다.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당회, 기관장 회의, 각 기관별 기도회, 교역자 회의 등 거의 모든 소통을 줌으로 하면서 성도들의 교제와 소통의 새로운 장을 경험하고 있다. 특별히 주일학교는 줌 목회를 통해 먼 거리로 이사 간 어린이들까지도 예배와 성경 공부에 참여하고 있다. 목회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심방 사역도 각종 SNS를 활용한 비대면 심방과 ‘문고리 심방’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통해 성도들의 영적 필요를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사역의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탄력적으로 확장시키면서 지역교회들은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목회적 영역을 개척하며 기회를 찾고 있다. 이러한 목회적 대안들은 시대적 흐름에의 타협과 순응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사명 안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적 적용이다.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 안에서는 ‘하나님 사랑’(예배)과 ‘이웃 사랑’(사회적 책임)이 상호 갈등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얼마든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예배를 세워나갈 수 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함으로 희망과 용기의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인내함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남겨두신 ‘쉐리트’, 즉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시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다 잘려나가도 그루터기가 남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땅의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뉴노멀 시대의 하나님의 그루터기, 즉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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