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코로나 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만남’이라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 보는 만남은 이제 대부분 온라인에서 함께 접속하는 의미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제대로 된 소통을 방해하고, 서로 교류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껏 함께 만날 수 있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은 무엇보다 만남과 소통이 중요하기에,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상황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교사와 아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언택트(Untact) 시대에 콘택트(contact)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함께 다양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찾아 사용 방법을 익히고, 활용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위기 속에서도 소통하며 만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노력을 통해 평소 대면할 때에는 소극적이어서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지 않던 아이도 온라인 환경에서는 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대면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 아이들의 소리를 균등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 19’가 본격화한 지 14개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소통이 대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통은 ‘상대방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코로나 19’로 소통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오히려 상대방의 소리를 듣겠다는 의지와 마음을 키우고,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소명을 가르치며 이러한 소통의 과정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 ‘소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커 파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뷰크너의 정의는 소명이란 자아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소명은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출발하여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이 지으신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필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 스스로가 나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의 소리와 소통을 하는 것이 소명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의 소리가 너무 커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그 불안은 내면의 소리를 막아 버린다. 청소년들의 내면의 소리를 막아 버리는 대표적인 세상의 소리는 바로 ‘입시’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계속된 경쟁과 그 속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이 자신의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를 놓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왜 자신들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느냐고 탓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나눔의 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는 자아를 만나게 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고 소명의 시작이다. 이러한 소통의 시작에 있어서 예수님은 먼저 본을 보여주신 것 같다. 바로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고, 소통하시기 위해 먼저 다가가신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셨던 모습,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소통하시고 그릇을 함께 쓰시려는 교제의 모습은 ‘소명’이 시작되는 중요한 장면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주 진행하는 소명 수업을 통해 청소년들이 내면의 소리와 세상의 필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 가치, 강점 등 자신의 본래 모습과 내면에 집중하고 글을 쓰며 정리하도록 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회복해야 할 부분을 탐색할 수 있도록 현장체험이나 소명인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처럼 나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현재는 청소년이 주요 대상이지만 이러한 과정은 여성, 노인, 남성 등 전 세대에 걸쳐 필요한 소통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나 전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처음 언택트(Untact) 시대를 살아가게 되면서 막연하게 품었던 염려와는 달리 오히려 소통의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대가 되었다.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서로 소통하며 삶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통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소통의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소통의 길은 열려 있는 뉴노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소명’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소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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