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샘물중고등학교’는 2009년 성남 분당의 상가 건물에서 시작해서, 판교를 거쳐 현재 용인 동백에 자리를 잡고 있는 기독교대안학교이다. 학교 공간위원회는 캠퍼스를 이전한 후 학교의 역사를 기념하는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프로젝트의 참가 인원은 금세 늘어났다. 물론 작업에 대한 관심보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온 아이들이 더 많았지만 그렇게 결성된 프로젝트팀은 밤을 새우면서 함께 조형물을 완성했다.
이를 계기로 ‘샘물중고등학교’는 해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 순례가 있는 4월이 되면 순례의 걸음을 형상화하여 설치작업을 해왔고, 작년에는 코로나로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면서도 전교생이 ‘천지창조’를 주제로 슈퍼그래픽(벽화)을 제작했다. 그리고 미술 전공반과 글짓기 수업 학생들이 힘을 모아 수필 모음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올해도 여러 학과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수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경-과학-미술과’가 함께 하는 <노작과 서클 중심의 마음밭 수업>, 교내에 이정표를 세우고 산책길을 만드는 <둘레길 프로젝트>, ‘성경-음악-미술과’가 연합하여 구약 시대 성막을 재현하는 <성막 프로젝트>가 있다. 이외에도 생태와 환경을 테마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열리고 있다. 파커 파머(Parker J. Palmer)가 제안한 대로 학생들이 직접 환경을 구성하는 것은 교육의 주체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고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과의 지식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샘물중고등학교’의 캠퍼스는 비교적 크고 평범하다. 산자락에 위치한 학교는 부지 구입과 토목 공사에 예산을 할애하느라 아쉽게도 심미적 관점보다 사각과 직선의 실용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가 주장한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는 말을 빌리면, 교육은 인위적이고 고루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네모난 교실과 만나서 더욱 굳어진다. 이런 화석화된 땅에서 교육의 본질을 찾고 지식의 향연과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일까? 그리고 사각과 직선의 베틀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문양을 직조할 수 있을까? ‘샘물중고등학교’는 이에 답하기 위해 학교가 처한 상황과 자원, 그리고 학교의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미래 교육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의 큰 틀과 배움의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섬기는 예수 제자’를 목표로 하는 ‘샘물중고등학교’는 ‘하나님을 알아감’, ‘섬기는 공동체’, ‘선한 청지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그렇다면 핵심 가치를 어떻게 교육에 구현할 것인가? 이 물음은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코로나 상황이 만나면서 급격하게 팽창되었다. 팬데믹은 전통적인 학교 시스템의 변화를 촉진하면서도 교육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탐색하게 만든다. 코로나 이후의 교육에서는 협업과 변혁적 능력이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으며, 기독교대안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지식교육을 지양하고 역량 중심의 교육에 비중을 둘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을 진단하고 창의적 활동과 소통 능력, 자율성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과 공간을 개발하는 것은 미래 교육의 조건을 충족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선행하여 기독교대안학교에서는 역량 중심의 교육이 과연 성경적 기준에 합당하며 교육 활동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성경적 적용에 있어서는 성막 제작과 연구, 교육에 있어서 영성과 전문성을 강조한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사역을 들 수 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가 말한 대로 최초의 성막 공사에는 디자인, 설계, 기술, 규칙 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지식이 요구된다. ‘샘물중고등학교’도 성경적 통찰과 교육적 연구를 통해서 학교 교육과정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그 역량의 성격이 가치 지향적이고 변혁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학교가 추구할 역량을 ‘전인격적 지식’, ‘공동체를 세우는 삶’, ‘선한 청지기’,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규정하였다.
‘샘물중고등학교’는 역량교육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로 교내에 다양한 창작 활동을 위한 메이커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기존의 메이커 교육이 주로 디지털 기술에 집중되었다면 이 학교의 메이커 공간은 아날로그 방식의 창작 활동에 비중을 둔다. 현재 미술실, 과학실, 목공실, IT 및 3D 프린터실, 사진 스튜디오, 텃밭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봉실, 도예 공방, 플라스틱 방앗간 등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목공실과 텃밭은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노작 활동과 STEAM 융합 수업의 산실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전문적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가 학생들의 제작 과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교과 수업 및 동아리 활동과 연계하여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
물론 교육을 위한 논의의 주제가 공간에만 머물 수는 없다. 기독교대안학교의 실제적 고민은 여전히 예산 운영, 학생 모집, 진학 지도가 일 순위일 것이다. 산적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교육과정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기존의 교과 편제와 시간표를 고치고 교실을 해체하는 방식은 학교 구성원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원만한 변화를 위해서라도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주체들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감안하더라도 기독교대안학교는 교육과정의 독립성과 소통의 유연성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샘물이 흐르다가 돌아가고, 다시 모여 강과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교육과 수업에 관한 고민을 나누면서 성장할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는 힘. 그것이 기독교대안학교의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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