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의 단촐한 이력에도 교육 관련 경력이 한 줄 적혀있다. ‘예수향남교회 교육전도사.’ ‘교육전도사’도 교육 관련 종사 이력으로 쳐준다면 말이다. 학부에서 신학을, 대학원에서는 인류학을 공부한 나에게 누군가가 와서 교육에 대해서 한마디 해 달라고 한다면 군말 없이 다른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지만, 기독교 대안학교에 대해서라면 약간은 할 말이 있다. 내가 2년 반 동안 초등부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했던 교회가 ‘기독교 학교’(가명)라는 기독교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내가 맡았던 초등부는 약 100명의 3, 4학년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주 한 시간, 길어야 두 시간 함께 예배하는 그 시간을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설교, 각종 프로그램 그리고 공과를 준비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나를 아이들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게 해주었던 몇 가지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3, 4학년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애 취급’은 금물이라는 것. 진심으로 아이들을 ‘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고 거리를 둔다. 둘째, 그러나 이 친구들은 여전히 똥이나 코딱지가 등장하는 더러운 이야기에 매우 격렬하게(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어떤 사연으로 인해 교회에서 내 별명은 ‘김재똥 전도사님’이었고, 아이들은 ‘김재똥 전도사님’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잘 열었다. 그 별명 덕분에 나는 초등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 아이들의 뇌리에 지금까지도 깊이 박혀있다.
모든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신앙의 전수’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 할수록 뼈아프게 절감했던 것은, 일주일에 한두 시간 가지고 신앙의 전수는 턱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훨씬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튜브와 SNS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앙의 전수’를 위해 남사스러운 별명까지 이용해가며 몸을 던지는 한 전도사의 눈물겨운 몸부림이 기특하고 가상하긴 하나, 그 어색하고 안쓰러운 몸부림에 아이들의 신앙교육 전부가 맡겨진 것만 같은 상황이 벽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을 무기력함과 패배감에 시달렸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스마트폰과 SNS를 달고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컨텐츠가 무작위로 난무하는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즐겁게 헤엄을 치는 아이들. 그런 상황에서 겨우 일주일에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예배 및 설교 준비의 의미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게 해줄 최고의 해결책으로 찾은 것은 ‘가정’이었다. “만약 아이들이 가정에서도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주일에 들은 한 시간짜리 설교를 가지고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대화하고 적용해볼 수 있다면?” 이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님과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미션을 만들어서 모든 아이들에게 매주 나눠줬다. 미션에는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처음부터 약 20%의 참여율을 보였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아이들과 가정들이 꾸준하게 미션을 수행해 줬다. 참여율을 더 올리기 위해 그런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공개적으로 시상하기로 했다. 초등부 예배가 마친 뒤 광고 시간, ‘하나님의 가정’ 미션을 일정 횟수 이상으로 수행한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 순간 나는 알아챘다. 이 아이들 중 거의 전부가 기독교 학교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나머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앉아서 박수를 쳤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우리 부서 아이들을 자연스레 두 부류로 구분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교 학교 아이들과 일반 학교 아이들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기독교 학교 아이들은 일반 학교 아이들보다 성경 지식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고, 자의든 타의든 참여적이며, 문화적으로도 교회 친화적이다. 실제로 ‘저 친구는 기독교 학교 아이일 거야’라고 예상하면 거의 다 맞다. 그런데 종종 예상을 비껴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너 기독교 학교 다니는구나?” 하고 물으면 명랑하게 “아니요? 저 OO초등학교 다니는데요?”라고 답하는 아이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반 학교와 기독교 학교 사이에 그어진 엄연한 경계를 허무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히브리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 나은” 기독교 학교 학생이라고나 할까?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이 저 아이를 이렇게 특별하게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늘 한결같이 ‘가정’이었다.
'김재똥 전도사님'으로 사는 동안, 나의 임무는 모든 부류의 아이들을 ‘더 나은 기독교 학교 아이’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고민의 핵심에는 늘 가정이 있었다.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을 경험하면서, 가정의 힘이 신앙교육에 얼마나 절대적인지 더욱 절감했다. 기독교 학교 아이들은 분명 특별하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특별함은, 기독교 학교의 특별함보다는 그들이 속한 가정과 부모의 특별함에 더욱 근원적인 빚을 지고 있다. 신앙이 빠진 가정은 맹목적이고, 가정이 빠진 신앙은 공허하다. ‘김재똥 전도사님’으로 살며, 더욱 그렇게 믿게 되었다. 가정이야말로 신앙교육의 핵심이며, 가정이야말로 가장 고되고 고귀한 부르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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