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성인이 되면 ‘학교’가 아닌 다른 단어들로 나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학교’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나에게 큰 복이다. ‘기독교대안학교’는 공교육의 대안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대안학교’의 한 갈래이자, 그중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하여 교육하는 학교를 말한다. 사실 기독교대안학교는 나의 미래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았던 선택지이다. 그랬던 내가 ‘기독교대안학교’에 있게 된 것은, 상황과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2017년 군 복무 생활을 마친 내게 미국의 ‘기독교 학교’(Christian School)에서 보조교사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저 그런 교사가 되지 말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멘토 선교사님의 추천 덕분이었다. 그 학교는 신기하게도 교회 건물을 학교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중에는 교회가 비어있기에 그 공간을 학교로 활용한 것이다. ‘운동장이 반드시 있고 전교생은 몇백 명이 되며 각종 시설이 구비된 큰 건물이 있어야 학교’라고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은 완전히 부서졌다. 그때 ‘학교’란 무엇인지, ‘교육’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학교도, 교육도 ‘공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교사와 학생! 그게 다였다. 미국에서의 3개월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교회 누나의 추천으로 1년에 한 번 전국의 기독교대안학교 선생님들이 모인다는 ‘기대연(기독교대안학교연맹)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동역자 선생님들을 만났다. 티키타카하며 친밀한 선생님들의 모습과 학교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내 마음에 확신이 들었던 것은, 바로 ‘학교의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학교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이후로 내 마음속에 꿈꿔온 학교의 모습이 있었다. ‘교회를 학교 건물로 사용하고 전교생이 30명 남짓의 소규모 학교’. 그런데 그러한 학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기독교대안학교 교사로서의 첫해, 사회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사회 교과를 연구하고, 연구한 교육안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이상적인 것이었다. 우리 학교가 소규모이다 보니 각 교과마다 한두 명의 교사만 존재하였고, 그중에서도 사회과는 내가 유일했다. 혼자 연구해야 했다. 그리고 중1부터 고3까지 6개 학년을 모두 맡아야 했다. 거기에 내가 전공한 ‘일반사회’ 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가르쳐야 했다. 감사하게도 군 복무 시절 장교로 복무하며 역사교육을 했던 터라 마음의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연구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연구할 시간이 빠듯한 이 상황 속에서, 나는 추가적인 수입 활동도 해야 했다. 대부분의 기독교대안학교들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월급이 넉넉하지 않은데, 더군다나 나는 비상근(파트) 교사로 시작했던 터라 다른 수입 활동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미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마음을 먹고 이 세계에 발을 들였기에 각오는 되어 있었고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다만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오후에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일하며 ‘쓰리잡’을 했다. 집에 가면 녹초가 됐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하고 싶은 일,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재정적 어려움 외에 힘들었던 점은 ‘나의 부족함’이었다. 교과 지식은 연구하여 채울 수 있었다. 교과 지식의 영역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다.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삶의 영역’이었다.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눠야 하다 보니,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야 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나의 특기는 ‘게으름’이었다. 그래서 내 삶을 다 열어놓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내 삶을 나누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기독교대안학교 교사를 시작한 첫해, 당시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없던 터라 교장 선생님이 통학이 힘든 아이들과 함께 자취를 하고 계셨다. 그러다가 사정상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고, 상황을 들은 나는 학생들과 함께 살겠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 CCC(한국대학생선교회) 활동을 할 때, 간사님이 자신의 집을 오픈하여 학생들을 집에 불러서 밥 먹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등 삶을 나누는 그 모습에 감동했었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막연한 동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우리 학교 형제 2명과 함께 살게 되었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삶을 나누며 행복했다. 부족함까지 다 드러내며 서로 채워가며 살았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졸업하고 함께 살지 않지만, 자주 놀러 와서 여전히 함께 삶을 나눈다.
지금은 더 이상 ‘쓰리잡’은 하지 않고, 담임교사에만 집중한 지 3년 차에 접어든다.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사용하시고, 차근히 내 속도에 맞춰 부족함을 채우시며 지경을 넓히셨다. 첫해는 교과목에 더 집중했고, 두 번째 해는 내 반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교사였다면, 세 번째 해가 되면서는 전교생을 내 반 아이들로 여기게 되었고, 이제는 함께 살지 않는 아이들 모두와도 삶을 나눌 수 있는 교사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교무실에 찾아와 이야기하며 논다. 하교하고서도 심심하다고 연락이 온다. 고민이 있다고 먼저 찾아준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습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지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알게 하셨다.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삶을 나누는 교사이기를 기도하고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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