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떡으로 배부른 이의 영적 기갈을 해갈하다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 / 황의찬 / CLC / 2021
삼성 창업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생애 말에 ‘신에 대한 질문 24가지’를 남겼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의 사후 25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질문지를 받아 보관하고 있던 신부로부터 질문서를 넘겨받은 고 차동엽 신부가 <잊혀진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냄으로써 이 사실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병철 회장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 기독교 역사와 교회의 실태를 망라하는 궁금증으로 기독교계에 질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답변을 내놨다. 어떤 이는 신문에 전면광고로, 어떤 이는 언론과의 대담 형식으로 답했다. 철학자와 평신도까지 나섰다. 이들은 모두 질문자가 이미 고인이 되었으므로 질문 자체에 의미를 두고 답을 시도했다.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이하, <이병철의 하나님>)은 저자 황의찬 목사가 마찬가지로 이미 고인이 된 이병철 회장의 남긴 질문과 교감하면서 그 답들을 모색한 과정의 결실이다, 저자는 이 회장이 남긴 자서전을 비롯하여 그에 대한 여러 권의 평전에 여실히 드러나는 이병철 회장의 생애 굴곡을 찾아내었고, 그 지점에 닻을 내리고 말을 걸었다. “그와 점심은 같이 할 수 없지만 이야기는 할 수 있다”라며 책을 시작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야기 프레임으로 첫 장을 연다. 이 회장이 남긴 24가지 질문에 답하는 일은 그 자체가 기독교 변증이다. 첫 질문이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다. 질문자는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창조론, 진화론, 신정론, 성서론, 종교론, 내세론, 교회론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 나열된다. 자칫 고도의 신학 이론이나 교리로 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학문적 혹은 형이상학적 답변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질문자의 삶으로 해답을 모색한다.
책을 펼치면 지금까지 알아왔던 재벌 회장의 화려함과는 사뭇 거리가 먼 인간 냄새에 찌든 부자간의 특별한 재회 장면으로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대응적으로 존재하는 동일성이 무수히 많다는 ‘유비’에 천착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의 행동과 삶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남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닮는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속성을 띤다. 저자는 피조물에 드러나는 창조주의 속성으로 질문에 답한다. 한국 최고의 재벌 회장이 평생 불신자로 살면서 하나님에 대해 24가지 질문을 남겼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나약한 모습과 함께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갈증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언제든지 쟁점이 될 개연성이 있다. 이병철 회장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먹지 않았지만, 세상의 ‘떡’으로는 누구보다 배부른 사람이었다. 평생 아무 고난도 없고 번영만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의미하다. 만일 그런 이가 있다면 이병철 회장은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라고 사람들은 상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병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가 누린 번영보다 그가 당한 고난이 훨씬 더 컸음을 감지했다. 특히 1966년에 촉발된 사카린 밀수 사건은 이 회장의 일생에 가장 큰 상흔을 남겼다. 바로 그 사건을 얼개로 책을 써 내려감으로써 책 읽는 재미를 유발한다.
저자는 읽는 이의 흥미를 돋우는 한편 성경적 측면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대답을 시도하면서 기존의 기독교 신학이나 교리로서 뻔한 답을 내기보다는 저자만의 독특한 ‘이야기 신학’을 들고나온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에 이미 5권의 책을 출간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필두로 장애인 자녀 둘을 키우고 하나를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의 고통 중에 참회록으로 발표한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 신정론을 다룬 <붕어빵>, 다윗의 범죄를 정면으로 끄집어낸 <밧세바의 미투>, 유신 진화론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교회를 향해 <아담은 빅뱅을 알고 있었다>를 내놓았다. 저자는 특별히 <이병철의 하나님>에서 자신의 신학을 총동원하여 혼신의 힘을 모아 답변한다. 지금까지 저자의 모든 책이 그래왔듯이, 이 책에서도 저자는 ‘이야기’로 반전을 시도한다. 책의 발단에서 등장한 ‘이야기’는 대단원에 이를 때 두 개의 거대 담론으로 나누어진다. 우주의 생성과 인류의 역사는 물론 개개인의 삶을 주도하는 ‘이야기’로서, 먼저는 절대자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주어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 다음으로 전 과정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이야기가 있음을 갈파하면서, 만일 주어 없는 이야기에 속했던 독자라면 이제는 주어 있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라고 권면한다.
저자는 <이병철의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기독교 신자들만의 신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나님이고, 신자에게만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거시며, 자기를 계시하는 분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밖에, 멀리 계신, 상아탑과 신학자의 서재에 갇힌 신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문을 판독하여 질문에 답한다. 신자든 불신자든 읽는 이에게 자기 삶에서 함께 숨 쉬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안내한다. 저자 특유의 신학을 시장바닥의 털털한 이야기 속에 넣어서 재미와 함께 신앙을 말한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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