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의 한계를 지적할 때 가끔 “그도 역시 시대의 아들(혹은 딸)이었다”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나도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초월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인지 ‘시대’가 ‘세대’로 바뀌었다. 같은 땅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꼰대 세대’, ‘386 세대’, ‘MZ 세대’(2030 세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특히 MZ 세대는 그 전 세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을 뿐 아니라 아예 다른 문법을 쓰는 것 같다. 우리 역사상 젊은 세대와 그 전 세대가 이렇게 달라 본 적이 없다. 미래에 큰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인간 만사가 다 그렇듯 물론 MZ 세대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MZ 세대의 긍정적인 면은 우선 한국 사회의 망국적인 이념 갈등에 비교적 초연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위협도 실감나게 경험하지 않았고 독재정권의 탄압도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보수나 진보가 되어야 할 상황적 이유가 없다. 꼰대 보수가 걱정했던 전교조의 ‘세뇌’도 별 성공을 거둔 것 같지 않다. 거기다가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하고 언론자유의 혜택을 받아 전 세계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인지 한국의 시대착오적인 보수와 위선적인 진보의 편향성을 훤하게 보는 것 같다. 정치적 성향에서 MZ 세대가 ‘꼰대 세대’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보수파들이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만약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고 구태의연하게 행동하면 즉시 화살을 맞을 것이다.
특히 반가운 것은 MZ 세대가 공정성 혹은 정의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행·불행이 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오늘날에 공정성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기본이며, 현대사회 윤리의 핵심이다. 정직, 친절, 자선 등 다른 면에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공정성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긍정적인 현상이고 좋은 발전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MZ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의 상당한 부분은 바로 그들의 이런 장점들을 교회가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교회가 이념의 감염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자들 일부가 극보수 정치이념에 지나치게 휩쓸려서 복음 전도와 기독교 세계관 확산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그에 대한 진보적인 반작용도 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념의 우상을 버리고 사회통합과 평화에 앞장서야 세상의 소금과 빛도 될 수 있고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여 젊은이들도 불러들일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강조하는 공정성에서 교회는 MZ 세대를 능가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의 정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거나 성취에 따라 보상하는 것이 아니다. 롤즈(John Rawls)가 주장하는 ‘차등의 원칙’에 충실하여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즉, 성경과 교회의 역사가 강조해 온 고아, 과부, 나그네 등 약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를 돌보는 사랑을 좀 더 열심히 그리고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려면 개인의 물질적 축복과 교회 성장 같은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목표를 버리고 낮아지고 희생하는 십자가의 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물론 MZ 세대에도 약점들이 없지 않다. 서양 젊은이들 비슷하게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라 한다. 물론 공정성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그런 성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기부지수가 1위인 인도네시아나 9위인 미얀마를 이기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부지수가 128위로 매우 이기적인 일본이 그들 나라보다 불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부지수 2위 호주나 3위 뉴질랜드는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이기적이 아니고 동시에 공정하다. MZ 세대 일부가 가상화폐로 떼돈을 벌려는 것은 이기적일 뿐 아니라 피땀 흘려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공정하지도 못하다.
물론 MZ 세대가 이기적이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30대 상당수는 IMF 사태의 피해자들이고 20대는 높은 청년 실업률의 당사자들이다. 당장 일터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상황에서 이타적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기성세대가 책임을 져야 하고 미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꼰대 세대’도 할 말이 있다. 지금의 실업률이 3.5% 정도지만 우리는 실업률이 35%였을 때도 살아남았고 굶으면서도 죽도록 일했다. 구걸하다시피 해서 받은 장학금으로 유학해서 선진 지식을 배워오고, 서독으로, 아라비아로 가서 노예처럼 일해서 돈을 벌었다. 그 덕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고 젊은이들이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4050 세대’도 할 말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인권 유린을 밥 먹듯이 하던 독재세력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였던 나라를 선진국으로, 원조받던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로 바꾼 기성세대의 공로는 인정해 주는 곳이 공정할 것이다.
어쨌든 한국 교회는 MZ 세대의 긍정적인 특징을 수용하고 장려하는 반면, 부정적인 특징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고쳐줄 수 있어야 건강한 존속과 발전이 가능하다. MZ 세대는 그 전 세대와 한국 교회에게 중요한 자극과 채찍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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