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한국갤럽'이 2021년 3월과 4월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40%를 간신히 넘기고 있다. 2014년 같은 조사의 결과가 50%였음을 생각하면, 꽤 눈에 띄는 변화라 생각해볼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더 줄었다. 이런 상황 탓에 어딜 가더라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 말할지 말지 여러 번 고민하는 일상이다.
청년들이 왜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한때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라는 것이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신앙을 지적인 믿음의 측면으로만 파악한 결과였던 듯싶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욱더 현실적이고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 다니는 사람의 현실' 때문이다. 뉴스나 신문에서 교회에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면 좋은 내용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코로나 19' 시기를 지나며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은커녕, 반사회적 집단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까지 생겼다. 교회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기도 어려운데,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피하면 피했지 함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불행히도 이 문제 앞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는 못하다.
나는 현재 여러 그리스도인 청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불편한 점이 생긴다. 서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인한 소음, 위생 문제, 불평등하게 보이는 역할 분배 등. 혼자 살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도 생기곤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내가 말을 하지 말까?”, 혹은 “모든 생활 규칙을 문서로 만들어서 배포할까?”, “토론회라도 열어야 할까?”와 같은 생각을 했고, 실제로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더 고백하겠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적하는 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불편을 말하고 남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동안, 어떤 이는 묵묵히 공동체 일원으로 자기 책임을 다했다. 또 누군가는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이 주어지는가? 어떻게 해결할까?”에서 멈추지 않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겐 문제가 없어”라는 생각의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에 난생처음 112에 전화하는 일이 있었다. 늦은 밤 동네를 걷고 있는데 도보와 차도의 경계에 술 취한 상태로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직접 손을 대기는 마뜩잖았다. 그래서 대신 “귀찮다”, “별일 없겠지”, “그냥 지나갈까”, “왜 저렇게 있는 거야.” 생각하며, 112 신고로 지구대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다. 다음 날 오전, 경찰서로부터 귀가 조처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그 순간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변하려면 나부터 혁명이 필요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일부터, 작은 순간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했다. 공동생활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저 작은 것들을 잘 실천하는 일들이 꼭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부터 작은 습관을 세워보기로 했다. 바로 일기 쓰기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어느덧 일기는 내 부족함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방법의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방 정리하는 습관도 생겼다. 정말 작은 일이지만,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생활하며 생기는 불만도 작은 실천을 통해 하나씩 해결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일어나지 않을 혁명보다 강력했다.
다른 청년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교회 청년들은 인터넷에서 모이고 삶을 나누기에 힘쓰고 있다. 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의 몇몇 청년들은 ‘Discord’를 이용해 큐티 모임을 시작했다. ‘Discord’는 인터넷 메신저의 일종으로,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게임을 할 때,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또, 단순 채팅뿐 아니라 화상통화도 가능하고, 게시판 기능도 있다 보니 게임 이외에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다수의 청년들이 평소 이용하던 서비스의 장점을 잘 살려 신앙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시작은 두세 사람의 모임이었지만, 어느새 열 명 이상의 모임이 되어 삶의 영역에서 함께 변화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코로나 19'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다. 어려움을 한 번에 타개할 멋진 해법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일들일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청년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삶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 거리를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 그중 한 명이 되어야겠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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