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세상과 대화하는 기독교를 제안하다 : 한 신학자의 인문 고전 읽기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 김기현 / 조이 / 2021
오늘날 기독교 신앙은 여러 질문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기독교 공동체는 여러 방식을 통해 세상의 비판과 지적 가운데 놓여있는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어떤 이는 영성을 더 강조하고, 다른 이는 정치적 참여를 권장하기도 했다. 신학자이자 다독가로 알려진 저자 김기현 목사는 책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칼뱅의 이중 지식을 인용한다. 칼뱅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아는 두 가지 지식이 서로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세상을 바로 알아갈 때 제대로 된 신앙 또는 신학이 형성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한 살아있는 읽기를 권한다. 하나님이 단순히 교회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창조하시고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계신다면, 신자가 성경과 함께 세상의 학문을 같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인문 고전으로 알려진 15권의 책을 소개하며 신앙적 질문을 던진다. 그가 가져온 책들은 이른바 '위험한 것'부터 많은 목회자가 추천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하다고 여겨지고 누군가에게는 고전으로 평가되는 책들을 가져와서 그는 정직하게 질문하고 신앙적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에선 경건의 의미, 정치 참여, 안식과 쉼, 죽음, 희생 등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질문을 여러 고전과 함께 연결한다. 이 책의 1장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서 “무사고는 무배려”라고 해설하고 독자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때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학적 문제 해결 능력을 말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생각, 배려가 가능한 “생각”을 주목한다. 아무리 개인이 특정 집단, 공동체에 속해서 성실하게 일해도 타인을 생각할 줄 모르는 “무사고”로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수 있다는 점을 1장에선 나치 밑에서 성실히 일한 아이히만에서 발견한다. 2장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교양>이 소개된다. 여기서 신앙과 교양에 대한 성찰은 기독교 신앙의 여러 유산과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를 통해서 말하시고 알리신다는 점에 있다. 결국 독서는 신앙의 연장이자 기본적인 태도가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인문학과 신앙의 관계가 소개된다. 저자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인문학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럼에도 인문학을 통해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준다. 쇼리스는 가난해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인문학)이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갈 기회이자 변화를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교회가 긍정적 방향으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가 모든 이들에게 공동선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4장에서는 철학 고전으로 알려진 플라톤의 <에우튀프론>이 소개된다. 플라톤의 저술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광신에 가까운 확신이 어떠한 문제와 폭력을 초래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이 대목에서 저자는 신앙의 완고함에 대해서 질문한다. 저자는 신앙의 위험성은 반성하지 않음에 있다고 정리하고 유연하고 겸손한 태도를 제안한다.
5장에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험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칼 마르크스의 저술이 등장한다. 여기선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을 통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과격한 해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한다. 과연 우리가 가진 신앙/종교는 현실에 대한 저항을 없애고 그저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계속해서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서 정치, 리더십에 대한 해설을 이어간다. 기독교 신앙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서 특정 정치적 입장으로만 해석하는 분위기에 반해서, 이 책은 기독교 안에서 가능한 다양한 목소리, 해석을 제시하고 그럼에도 신앙인으로서 고민할 내용(복음, 십자가)을 제시한다. 결국, 신앙의 여정은 무언가를 쉽게 판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겸손히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정치적 이야기를 다루고 안식, 죽음, 희생이라는 주제로 이동한다. 현대사회가 강조하는 속도, 효율이 아닌 고전들이 제안하는 안식, 노동, 죽음은 기독교 신앙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신앙의 목소리와 고전에서 만나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동행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런 공동의 목소리를 지나서 저자는 믿음과 의심 그리고 용서를 다루면서 책을 끝낸다. 13장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가지고 의심에 대한 기독교의 지나친 경계를 지적하고 의심을 통한 신앙의 여정을 제안한다. 의심이 의심으로 그치지 않고 도구와 수단이 되어서 더 깊은 믿음으로 간다면 신앙에서 의심은 그저 피할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용서에 대해서 진지하게 해설한다. 용서가 얼마나 쉽지 않고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를 자크 데리다를 통해서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안에서 나아가야 할 용서하는 신앙을 강조한다.
15권의 고전을 통해 저자는 기독교 신앙과 대화시킨다. 이 과정은 그저 공부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기독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저자는 끊임없이 기독교 신앙이 결코 반지성적이지 않으며 세상에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인다. 이 책은 신앙인들끼리만 통하는 신앙의 언어를 넘어서 세상에 신앙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안내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하고 더 질문하고 이야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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