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이로비에서 긴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타투(미니버스)가 정류장을 떠나기 전에, 흰 칸즈(땅에 끌리는 튜닉)를 입은 남자가 올라타서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나를 보려고 자꾸 돌아서는 눈 큰 아이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낮은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옆을 쳐다보니 흰 칸즈의 남자가 쿠란을 꺼내 아랍어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는 반짝이는 검정색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순간 피투성이가 된 마타투 폭탄 테러의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치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불안감을 누르려 애쓰는 동안 땀이 흘러 셔츠를 흠뻑 적셨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견디다 못해 나는 결국 마타투에서 뛰어내렸다. 나를 두고 떠나는 마타투를 보며 나를 응시하던 눈 큰 아이와 승객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날 마타투 폭탄 테러는 없었다. 뉴스를 여러 차례 확인한 후 안도감과 당혹감이 함께 밀려왔다. 동료들은 나에게 2차 PTSD(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했다. 나처럼 테러 생존자들을 돕는 일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라며 어쨌건 버스에서 내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도 했다. 안전이 제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내 행동이 여전히 부끄럽고 실망스러웠다.
나는 다양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 사람이다. 서른이 되기까지 한 곳에서 5년 이상 산 적이 없었다. 캐나다, 미국, 한국 등 어디서나 ‘외계인’임에 익숙했다. 소속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일조차 눈총을 받는 것이 내 삶의 현실이었다. 그런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나는 전략을 짰다. 혹시 나부터 내 속에 있는 편견을 이해하고 초월하는 법을 익히면 나를 향한 편견들을 극복하고 고칠 수 있는 비법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속에 있는 편견을 알고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0년 넘게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수감자 등과 함께 일을 했던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덕분에 내 인생이 풍성해졌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남의 말을 깊게 듣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고 차이를 조금씩 극복하는 기술도 익혔다. 문화적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케냐에 도착했던 나는 나의 편견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평화롭게 아랍어로 기도하던 흰 칸즈의 남자를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편견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일깨우게 해주셨다. 물론 그동안 나의 노력이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내가 PTSD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로 끝이 날 수도 있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행동과 생각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끼칠 수 있는 행동과 생각인지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여러 편견에 대한 공부를 하되 초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대신 공부를 함으로써 열려진 눈으로 내가 실수할 때 사과하는 겸손함을, 그리고 남이 자신의 편견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려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무서운 것이 많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더 무서운 곳으로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뿐이라 하셨다. 그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생기는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행동과 생각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겸손함과 용기를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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