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와 법에 대하여
<기독교와 법>(이병주, 대장간, 2021)
현대 인간 사회가 있는 곳에는 늘 법이 있다. 법은 다원주의 시대에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적 조건이자, 다른 신념을 지닌 이들이 서로 공통된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의 매개체이다. 또한 다양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정당하게 분배받는 정당화된 근거이다. 동시에 법은 서로 다른 이들이 합의하여 세운 기준으로서 민주적 정당성, 내용적 타당성, 형식적 합법성을 지니는 사회구조의 뼈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은 1988년 10월 탈옥범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란 강자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라는 말로 상징되듯이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
한국은 2014년 OECD 국가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에서 27%를 차지하여 덴마크 83%, 독일 67%, 미국 59%, 멕시코 39%를 보여준 평균 54%에 크게 못 미쳤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이같은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사법 시스템이 존속되는 것에서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 하나는 고용된 총잡이로서, 즉 부정의한 사법 시스템 속에서 욕망과 돈을 좇아 살며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이웃에게 해악을 함께 미치는 삶이다. 다른 하나는 보냄받은 제자로서 부정의한 사법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화평케 하는 중재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두 가지 중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우리 각자가 현재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사용되는 시간의 총량을 근거로도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변명이 아니라 입증이 중요하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고용된 총잡이로 살아가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자신의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하나님에게만 사로잡혀 사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다. 누구나 이 둘 사이, 즉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갈등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와 법>의 저자 이병주 변호사는 현재 기독법률가회(CLF) 대표로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그리스도인 법률가의 삶을 살아오셨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생활 현장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직면하는 현실적 갈등들을 함께 고민하며 나름의 성경적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기독법률가회에서 나눈 발표와 토론, 인문학 서평 사이트 아포리아 및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좋은 나무> 등에 기고한 법과 신앙에 관한 글의 모음이다(23면). 저자는 집필의 목적을 그리스도인 법률가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법과 신앙의 관계 관련 물음과 답변을 함께 풀어 보자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22면).
특별히 이 책은 저자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법 관련 논점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고민을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해 다시 점검하며, 세상 속의 시민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중 정체성이 한 인격 속에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두 역할의 긴장 속에서 풀어내려 한다. 저자는 이를 위하여 헌법, 민사재판, 민법, 형사재판, 파산 회생법 등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평범한 말로 풀어놓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가 그리스도인 제자도와 그 도를 앞서 걸어간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법과 법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고민했는지, 그 생생한 열정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그리스도인 법률가로 사는 방식으로서 형사재판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바르고 정직하게 설 것을 제시하고, 피고소인이나 피의자나 의뢰인을 이웃 사랑의 대상으로 대우할 것을 제시하며, 법률가가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 자기 부인을 제시한다(135면). 우리는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률가라는 직업윤리와 부단히 통합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 법률가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오래되고 일관된 고뇌의 숨결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작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은 필자가 보기에 저자의 짧은 단상과 묵상의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함께 등장하는 성경 구절이나 기존 개념어의 의미 지평과 법 및 법이론 이해가 다소 주관적 관점에서 머문 경우도 간혹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닌 관계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필자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한 베테랑 그리스도인 법률가가 고민했던 점들을 함께 숙고해 나가며, 자신의 삶에서 중첩되는 고민을 해소하는 도움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자신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자 법률가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틴 루터는 “진정한 법률가는 나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듯이 법률가들은 그리스도인의 적인 경우가 많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필자는 이 문장이 “진정한 법률가는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듯이 법률가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친구인 경우가 많다”라는 말로 이 땅에 다시 쓰여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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