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선거가 리더를 뽑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고대 아테네에선 행정관을 추첨했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제비로 뽑혔다. 초대교회도 가룟 유다를 대신할 맛디아를 그렇게 뽑았다. 미국에선 재판의 배심원을 추첨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가 일반화되었다. 선거가 비교적 결점이 적은 ‘지도자 선출방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선거제도를 정착시키기까지 많은 희생을 치렀다. 독재가 종식된 후 계속된 노력으로 선거의 자유와 공명성이 크게 높아졌다. 후보에 대한 검증 장치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민의가 만족스럽게 반영된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선거가 끝나면 많은 이들이 불만을 품고 박탈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늘 낙선한다고 느끼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과반의 지지를 못 얻은 당선자가 사회를 통합하기는 근본적으로 난망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당선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홍역을 치렀다. 그 후유증은 ‘코로나 19’ 보다 훨씬 더 끈질길 것 같다.
선거제도의 한계도 있다. 여전히 흑색선전, 여론조작 같은 정치공작이 난무한다. 정책 대신 혈연과 지연, 학연에 호소하는 파벌주의가 판을 친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 남발도 다반사이다. 선거를 이념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일은 고질적 문제가 되었다. 우리 정치는 지난 이십여 년간 보수와 진보의 소모적 전면전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근래에는 일부 종교인들까지 나서 거들다 보니 종교 간 갈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고 관측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국내외 정세가 위태롭다. 반면에 후보들 면면이 금번처럼 우려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정책 대결 대신 누가 더 무능하고 흠이 많은지를 드러내기 위한 경연이 펼쳐지는 듯하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지지자들 때문에 도덕성이나 능력이 의심되는 이들이 감히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더욱 기도와 지혜로 임해야 한다. 무관심이나 회의적인 냉소주의는 선거를 망치는 가장 큰 악이다. 아무리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도 유권자가 무책임하거나 지혜롭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정치가 실망스럽고 혼란할수록 그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사실 피할 수가 없다. 정치가 삶의 모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영향력은 너무도 크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 없이 신앙생활도 바로 할 수 없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행하는 기회이다. 세속적 민주주의에서 완전히 결여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다. 후보에게서 하나님 뜻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그리스도인은 최선의 선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은 정치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지 않는다. 심사숙고해 하나님의 주권이 선거를 통해 나타나도록 힘써야 한다. 최선을 다해 살펴 차선의 후보라도 찾아서 투표해야 한다. 최악의 선택은 기권이다.
성경은 정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 제비를 뽑든, 선거를 하든,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원하신다(렘9: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하나님은 공평하고 정의로울 뿐 아니라 인애가 더해져 모두가 참된 평화를 누리는 ‘샬롬’을 실현할 정치를 원하신다.
여러 교회가 대선을 위해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제시된 기도 제목이 바로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감사하다. 이념, 계층, 세대 간 갈등으로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지도자를 세워 주소서. 개인적 야망을 실현하려 하지도 않고 편파적이지도 않으며, 공공의 선한 가치를 품어 일반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청렴하고 정직한 지도자를 세워 주소서. 비전을 제시하고 희생적인 봉사의 정신으로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세우소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남북한 관계를 비롯해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나라의 안위를 지켜내는 지도자를 허락하소서. 모든 교회가 마음을 모아 이 제목들을 붙들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참된 화해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 나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유익을 가져올 사람, 특히 약하고 힘없는 편에 서서 일해줄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바라야 한다. 이념이나 신앙도 따지고 인품도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평화 실현에 기여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선거 구호만큼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것도 없다. 그 옛날에는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갈아치자”가 압도적이었다. 그 후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대세였다. 독재 타도와 민주화가 뒤를 이었다. 지금은 배고픔이 아니라 배 아픈 것이 문제요, 불평등 때문에 평안이 없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구호도 달라져야 한다. “배고픈 이에겐 빵을 주시고 배부른 자는 공의에 굶주리게 하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와 공평과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할 지도자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젠 이런 기도가 구호를 대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이를 기준으로 ‘샬롬’을 위한 투표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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