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이 글의 목적은 곧 실시될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성경적 실천의 기본원리를 나누고자 함이다. 먼저 현재 한국 개신교 내에서 창궐하고 있는 비기독교적 정치 왜곡의 역사적 원인을 살펴보고 “보다 온전한 복음”의 정치적 실천 방안을 다루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 주류의 근본주의화에는 역사적 원인이 있다. 존 스타트(John Stott) 목사는 이를 세계 제1차대전 이후 서구 개신교계에서 발생한 ‘대반전’(The Great Reversal)으로 설명하고 있다. 급증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간성에 대한 환멸, 전천년설 세대주의 신학의 등장, 중산층 성도들의 보수적 동질화 추구로 인해 서구 특히 미국 개신교회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대반전의 시기에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한국 개신교회가 근본주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는 성공과 실패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근본주의적 신앙은 식민지화, 남북분단,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의 고통스러운 역사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보존하고 민중의 고통을 위로하는 일에 어느 정도 기여가 있었고, 따라서 제3세계에서 드문 교회 성장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교회 성장을 위해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와 세속적 성공제일주의에 영합하면서 점차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는 처지에 이르고 있다. 수단이 목적에 우선하는 ‘매개의 변증법’(*)이 발생했다. 박성철 교수의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을 보면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는 현재 교회의 사유화, 담임목사 숭배, 반대파 혐오, 교파 분열, 파시스트적 정치 동원이라는 일종의 종교 중독 증상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 중독은 사특한 이단 종파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단연코 기독교 복음과는 어울릴 수 없다.
20세기에 들어와 ‘보다 온전한 복음’으로의 새로운 반전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1966년의 ‘휘튼 선언(The Wheaton Declaration)’과 1974년의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을 통해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모두 그 열매임이 선언되었다. 한국에서도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기독교의 올바른 정치 참여에 대한 욕구가 증진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다 온전한 복음’에 대한 각성은 한국 가톨릭교회와 진보적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점차 보수적 근본주의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신앙의 뿌리와 열매가 분리될 수 없다는 온전한 복음으로의 각성은 기독교적 정치 참여의 기반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는 어떤 형태를 거치든 하나님 나라 구현이라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 혹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을 의미한다. 간혹 일부 종교중독자들이 “교회 부흥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택기준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이에서 벗어나는 지연, 학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는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동질성 또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가짜뉴스를 잘 분별하고 유권자를 속이려는 ‘연기’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공명선거가 진행되도록 감시・감독에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을 위한 지속적 정치학습이 커다란 과제이다. 가짜뉴스들을 제거하고 누구의 어떤 정책이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상대적으로 더 합당하느냐를 판단하려면 어느 정도 학습이 필요하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다행히도 한국교회에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비롯한 많은 기독시민단체들이 이러한 전문가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추천 공약, 채점표, 유권자 회의 등이 온전한 복음을 향한 선택의 문턱을 넘는 데 구체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 체제를 선택하고 유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이다. 칼뱅의 표현대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국민이 자기 자신의 정부를 선택하는 체제가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잘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이 은총을 거둬가실지도 모른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칼뱅주의 강연>(1898)에 인용한 칼뱅의 경고를 결론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자유를 주신 백성들이여, 여러분이 악한 자들과 하나님의 원수들을 가장 존귀한 자리에 선출하여 이 (하나님의) 호의를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 '매개의 변증법'은 필자의 독창적 주창 원리이다. 예를 들면 운동하려고 간사를 세우고 모금을 하는데, 나중에는 간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모금을 하기 위해 운동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매개 역할을 해야 하는 부문이 본질을 잡아먹고 마는 운동의 전도(顚倒) 현상을 경계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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