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22년, 스무 번째 대통령을 세우는 대선의 해가 밝았다. 나라의 거버넌스에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출을 위해 유권자인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단, 대통령 선정 기준에 과연 성경 진리와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비중 있게 두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지형이나 혈연, 지연, 경제적 이익 부합도 등에 따라 투표할지도 모른다.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이 폐하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대적이었던 자들마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폐하셨다. 산헤립이 그렇게 명멸했으며, 아기 예수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에돔 사람 헤롯 대왕도 그의 사후 얼마 안 되어 그의 에돔이 역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폼페이우스도 예루살렘을 철저히 짓밟았으나 약 100년 후에 그와 관련된 환락의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에 뒤덮인 채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며 응징당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분의 경륜 속에 세상 주관자의 권세를 세우고 폐하심을 믿는 가운데, 세워진 권세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선거에 특별히 더 신중하고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이유이다.
의외로 우리는 성경적으로 선거에 임하는 데 익숙지 않다. 아마도 성경에 선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찾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선거 이야기를 꺼내기가 주저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거에 임해야 할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진보와 보수 또는 우익과 좌익의 정치적 지형 논리에 함몰되면 안 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좌나 우에 속하는 자가 아닌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보자의 정견과 정책 제안을 두고 그것이 하늘에 속한 것이면 나의 정치적 지형에 상관없이 지지하고, 땅에 속한 것이면 경계하고 책망하고 거부해야 한다. 최현종(2013)*의 연구에 따르면, 불교인은 보수적이고, 천주교인은 진보적이며, 개신교인은 상대적으로 중도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중도와 하늘에 속함은 다른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후보자가 혹여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어렵게 할 자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권세 있는 자들에게 복종하는 이유도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쪼록 그리스도인들이 평온한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기 위함이요, 주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 자유가 선한 일에 쓰임 받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만약 후보자가 각종 그럴듯한 논리로 교회의 평온함과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면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회가 항존직 직분자를 성경적이고 민주적 방법으로 세우는 방식을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장로는 양심이 있고, 무흠하여 책망할 것이 없고, 가정을 잘 이끌며, 권면과 치리를 잘하는 자여야 한다. 나라의 지도자도 그만한 도덕과 양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항존직 집분자들은 피택되면 일정 기간의 훈련을 받으며 한 번 더 검증받게 된다. 이를 참고하여 당선인이라 하더라도 추가 검증의 기회를 갖는 것을 검토해봄 직하다.
넷째, 한국 근대사에서 그리스도인 선배들이 기도하고 이루려 했던 바를 잘 참고하여 그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일례로 1945년 12월 1일 상동교회 기독학교 교사 위주로 결성된 ‘기독신민회’는 교회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고 교파를 초월하여 기독교적 평등 국가 건설을 꾀했다. ‘기독신민회’는 성경적 사상을 사회적으로 구현하고, 십자가의 건국이념을 반영함을 목표로 했으며, 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며,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 통일을 추구했다. 허정윤 박사는 ‘기독신민회’의 기독교적 이상과 가치를 미래의 한반도에서 실현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기독신민회’의 사상과 행보에 가장 유사한 대권 주자가 누군지 파악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선거판에서 흐르는 영적 기운이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지만, 사탄이 주는 생각은 분열과 저주와 분노이다. 또한 선거 기간 세속주의, 진보주의, 이성 절대주의로 점철된 것이 목도되며, 이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지적한 대로 기독교 세계관에 맞서는 근대주의 세계관들이다. 우리는 오늘날 선대위의 선거 전술 전략, 여론조사의 형평성, 언론 기관의 생성물 등이 영(靈)의 생각 및 기독교 세계관과 거리가 멀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특별히 교회는 이러한 기관에 종사하는 교인들이 세속적 세계관에 함몰된 사고나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선거 기간 전반에 성경적 원리와 성령의 생각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의 어둠, 어둠의 정치를 직면하고 있다. 어두울수록 참 빛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세계관으로 새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기도하고 선거에 임할 것을 기대한다.
* 최현종. “선거의 독립변수로서의 종교적 요인”. <종교와 문화>(Religion and Culture), (2013). 24, 12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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