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운 요즘이다. 후보들의 사생활을 캐는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특정 집단의 요구에 영합하는 선심성 공약이나, 혐오의 언사들이 선거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어젠다와 비전보다는,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혹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포퓰리즘성 공약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형편이다. 후보자의 국정 운영 능력과 지도력보다는, 가족과 측근의 비리가 더 크게 보이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많은 이들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부른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고민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는 선거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필자 역시도 그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매일 쏟아지는 선거 뉴스를 보면서, 후보들의 공약과 비전을 검증하기보다는, “저 후보는 저래서 안 돼”라는 생각이 늘 앞섰으니 말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대선후보들의 경쟁 구도 속에서 스스로 피로감을 느끼고, “될 대로 되어라”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을 안고 글을 준비하던 중, 5년 전 19대 대선 당시에 필자가 개인 SNS에 게재했던 <그리스도인과 시민의 책무>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촛불집회를 통해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직후, 정치적 효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당시에 썼던 글에는, 민주국가의 국민주권 원리는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허락하신 기회이자 책무이며, 그리스도인이자 시민인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성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거대양당제의 기성 정치가 짜놓은 갈등 구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주권자로서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기준이 스스로 무너져 있는 것은 아니었던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대선판이 ‘비호감 대결’이 된 것은 그렇게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다. 거대양당제가 고착화된 한국 정치에서 각 정당은 상대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정권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왔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정치투쟁에 익숙해진 나머지, 유권자가 스스로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정권 재창출 아니면 정권교체라는 이항 대립의 구도로 정치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은 주권자로서 자신의 양심과 기준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후보들이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만들어내는 갈등 구도에 휘둘리면서 선거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기성 정치권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에 만들어진 갈등의 선들을 이용하고, 상대 진영을 매도하면서 정권을 잡는 데만 골몰하게 된다. 그러한 악순환의 결과가 지금의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자 ‘시민’인 우리는 각자의 양심과 신앙에 비추어 각자의 기준을 세우고, 주체적으로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친일 공세나 색깔론, 젠더 갈등과 같은 기존의 갈등 선을 증폭시켜 자신들의 표를 확보하려는 기성 정치권의 저열한 정치공학에 휘둘리지 않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주체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시대가 혼란스럽고, 대선판이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보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허락된 한 표를 최선을 다해 행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청년으로서 이번 대선에 바라는 점을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동안 청년세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이어 오면서 들었던 문제의식은, 기성 정치권이 청년을 다루는 방식이 청년들을 그저 동원의 대상으로서, 혹은 지원의 대상으로서만 다루어 왔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혹은 각 정당의 소위 ‘청년 정책’을 보면, 청년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만한 단발성의 지원 정책이나 사업만 남발해 왔을 뿐, 청년들이 미래의 주체로서 활약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여건을 만드는 데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청년 정책도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의 주체로서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청년기는 교육과정을 종료하고 사회에의 진입을 준비하는 이행기로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렇기에 청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활약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사회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라건대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장기적인 안목과 긴 호흡을 가지고 청년들의 목소리에 응답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지러운 대선판 가운데 여전히 마음이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리고 역사에 보냄 받은 자로서의 소명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우리의 한 표를 행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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