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현대 기술 사회에서의 새로운 신화
<새로운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 / 자크 엘륄 / 박동열 역 / 도서출판 대장간 / 2021
최근에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며 엘륄이 사후에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현시대에 심각하게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 및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전 세계적 금융 위기 같은 사회적 위기, 통제되지 않는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의 위험,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와 기후 재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핵 재난, 유전자변형 식품과 광우병, 동물 복제로부터 시작된 인간 복제의 가능성, ‘코로나 19’ 같은 대유행 전염병 등이다. 그런 위기와 위험과 재난에 직면하여 해결책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시도 가운데서, 기술을 중심축으로 하는 엘륄의 사상을 돌아보니 그 해결의 실마리와 단서가 발견된 것이다.
엘륄의 사상은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으로 구분되면서도 통일성을 유지한다. 그중 사회학적 측면은 기술, 선전, 정치, 혁명, 국가, 예술 같은 분야에서의 현대 기술 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신학적 측면은 성서 연구 및 자유, 소망, 기도, 돈, 폭력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신학적 고찰 혹은 윤리적 고찰로 나타난다. 엘륄의 저작 전체에서 <새로운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런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저서이다.
엘륄은 현대 기술 사회에 등장하는 새로운 신화들을 들면서 이에 대해 분석한다. 우선, 그는 현대 세상에서의 세속화 이론이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그런 지적은 현대인이 여태껏 볼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현대인이 기독교에서는 벗어났지만 ‘신성한 것’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현대 세상이 세속적이고 세속화된 세상, 무신론적이고 종교와 무관한 세상, 신성을 박탈당한 탈(脫)신화화된 세상이라는 것이 사회 통념이 되었지만, 현대 세상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종교의 시대가 결국 끝났다는 견해가 현대인의 실상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엘륄은 ‘세속화’와 ‘세속화된 사회’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현대인이 신성하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견해를 반박한다. 또한 현대 기술 사회는 신성한 세상이 더는 아니라는 견해도 반박한다. 그리고 ‘신성한 것’의 기능 그리고 ‘신성한 것’과 관련되는 요소들을 설명하고,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신성 박탈의 시도와 방향을 지적한다. 특히, 그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새로운 ‘신성한 것’의 중심 요소로서 기술을 들면서, 현대인의 근본 신화와 세속 종교가 무엇인지 밝힌다. 또한 현대 기술 사회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신화들, 특히 기술과 관련된 신화들을 분석하면서, 그 다양한 신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설명한다. 즉, 현대인이 ‘신성한 것’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았기에 현대 기술 사회에는 다양한 ‘세속 종교’가 존재한다. 그런 ‘세속 종교’에는 ‘국가’, ‘정치’, ‘돈’, ‘성장과 진보’, ‘스포츠’, ‘광고와 대중매체’, ‘정보처리기술’처럼 인간을 소외시키는 신화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대 기술 사회에서의 그런 새로운 신화들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즉, 인간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그 신화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려운 상황을 감당해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그 신화들에서 근본적으로 신성을 박탈함으로써 그 신화들을 없앤다면, 엄청난 대다수의 사람을 광기나 혹은 자살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이처럼 현대 기술 사회에 등장하는 새로운 신화들은 현대인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으로 제시되거나 광기를 막아주는 기능과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신화들이 수행하는 그런 기능과 역할을 통해 다음 같은 문제가 반드시 수반된다.
그런 신화들을 통해 생겨나는 문제는 현대인이 그런 신화들에 매혹되어 그 신화들을 우상처럼 숭배한다는 것이다. 정보처리기술 혁명 이후부터, 일상생활에서 현대인 각자는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삶이나 미래와 상관없는 수많은 정보에 매몰되어 있다. 더욱이, 정보처리기술을 통해 현대인은 모든 것에 대한 현실감을 잃어버린다. 또한 현대인에게는 어떤 현실이든 그 자체와 다른 추상적이고 멀리 떨어진 내용 없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자신에게 절대적인 힘과 무한한 자유를 줄 것 같은 기술이라는 엄청난 도구에 매혹당하고 사로잡힌다. 그래서 현대인은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왜 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없다. 그 때문에, 현대인 모두 일종의 최면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엘륄은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자유가 순전히 허구임을 인정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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