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금 왜 신사참배를 다시 이야기하는가?
<신사참배> / 오창희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21
<신사참배>는 “왜 신사참배를 다시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명료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 오창희는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창설 멤버이자 총무로 섬겼고, 서울대에서 서양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Ph. D)를 받은 학자이며, 현재 지역교회 목회자(흰돌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계신 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사참배> 저술 동기는 신사참배가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에 한국 교회가 머리를 숙인 사건이 아닌 훨씬 더 심각한 죄악일 수 있으며, 그런데 다수의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죄를 아직까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회개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한다. 또한 저자는 흥미롭게도 한반도의 남북분단과 북한의 공산주의의 원인을 일제 강점기의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신사참배 죄악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고 있다.(30, 138면). 저자는 그렇게 된 이유가 우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고, 회개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대표적 오해들은 “우리 세대가 짓지 않은 죄를 왜 회개해야 하느냐”라거나 “죄를 몇 번이나 더 회개해야 하느냐”라는 반론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성경에 대한 무지의 반영이다. 저자는 이 무지들을 바로잡는 해법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의 다니엘을 소개한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사건을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민족의 죄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의인으로 인정받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고 회개하였다.”(213면). 또한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기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있고, 포로생활 중에도 이스라엘이 여전히 이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우선 이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212면). 마찬가지로 저자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역시 다니엘을 따라가야 해야 할 다음 세 가지 시급한 과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를 정확하게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208면). 둘째, 법적으로도 충분한 취소 결의가 있어야 한다.(210면). 셋째,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친 후, 날짜를 잡아서 모든 교회가 일제히 진정한 회개를 하여야 한다.(212면).
그렇다면 도대체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의 신사참배 죄악이 어떠하길래 저자는 이토록 시급하고도 구체적인 해법의 실행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상징적인 사건의 한 대목은 이러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목사들이 서울의 한강과 부산의 송도 앞바다에서 일본 신도 중들이 행하던 신도의 세례(침례), ‘미소기하라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미소기하라이란 신도의 예식 가운데 참배 전에 자기 몸을 깨끗이 씻는 의식을 말한다.....기독교의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과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도의 세례를 받는 것은 신도의 신과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미소기하라이는 ‘천조대신(天照大神)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라고 고백한 사람에게 베풀어졌다.”(104~105면).
장로교는 1938년 9월 10일 결의를 통하여 신사참배를 합법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감리교 역시 같은 해 10월 7일 이른바 양주삼 총리사를 비롯한 참석자 전원이 ‘애국일’ 행사를 치루며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한 후, 남산의 조선신궁에 가서 신사참배를 하였다. 이것도 모자라 1938년 12월 12일에는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일본까지 건너가 여러 곳의 신사를 참배하고 왔다.(101면). 반면에 한국교회는 주기철, 이기선, 한상동, 주남선 목사와 같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면직 혹은 제명하거나 교회에서 추방하였다.(102면). 저자에 따르면 당시 한국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한 것은 낙타 머리를 천막 안으로 들어오도록 용인한 것과 같았다. 한번 신사참배를 용인하자, 그보다 더 심한 행위들을 요구했을 때도 한국 교회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신사참배와 천황 숭배, 천조대신 숭배와 같은 요소들이 기독교 예배와 기독교 교리 안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그것은 곧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의 위치에 들어서고 말았다.”(131면).
저자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가 일제 강점기에 범한 엄청난 ‘신사참배’라는 엄청난 죄과의 의미에 대한 제대로 된 배움과 회개 실천의 기회를 아직도 갖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당시 한국교회의 실패와 다수의 신사참배 목회자들의 배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는 것이 마치 자신을 그 사건들과 무관한 역사적 의인인 듯 착각하는 혼동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자가 찾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다니엘에게도 다음 두 가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첫째, 만일 지금의 한국교회가 또다시 일제시대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한국 교회는 과연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둘째, 내가 만일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2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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