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웨슬리(Wesley Wentworth) 선생님을 1986년에 처음 만났다. 기독교학문연구회(기학연)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기대설)가 공동으로 진행한 학회에서 ‘학문의 힘과 한계’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할 때였다. 나는 그 당시 계명대학교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웨슬리 선생님이 아브라함 카이퍼 이후 네덜란드에서 발전된 개혁신앙과 개혁신학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종종 만나게 된 것은 1990년 3월 서강대로 옮긴 뒤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웨슬리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세 가지를 늘 떠올린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웨슬리 선생님은 다른 분들께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는 책과의 연결이다. 웨슬리 선생님은 배낭 가득 책을 담아 나의 서강대 연구실로 종종 찾아왔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들고 왔지만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이 자리잡은 미시간 그랜드 래피즈의 어드만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제일 많았다. 그것도 대부분 70% 할인한 가격으로 책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알라딘이나 아마존을 통해서 해외에서 나온 책을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때였다. 전공과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도서관에 신청하여 읽었지만, 기독교 관련 서적들은 이 당시 거의 웨슬리 선생님의 열심과 사랑에 의존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공에 매몰되지 않고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학과 기독교 철학, 기독교 교육, 기독교 세계관 주제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따라가면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극을 준 웨슬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2000년대 들어서서 아마존을 통해서 쉽게 책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웨슬리 선생님의 방문은 줄어들게 되었지만, 웨슬리 선생님은 저에게 책을 공급해 준 분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두 번째는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웨슬리 선생님은 많은 사람과 만남을 주선했다. 때로는 학교로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식당에서 만나기도 하고 기독교학문연구회나 IVF 수련회 때도 연결시켜 주어야 할 학생이나 학자들이 있으면 어김없이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였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아마도 홍병룡 간사님이 아니었든가 생각한다. 홍 간사님은 당시 IVP 일을 맡고 있었으니 다른 통로로 만날 기회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웨슬리 선생님이 통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웨슬리 선생님이 만남을 주선한 분들은 기독교 학문이나 기독교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분들만은 아니었다. 한번은 웨슬리 선생님이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오랫동안 가르치셨던 박영신 교수님 댁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학교는 가까이 있었지만 분야가 달랐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그때까지 없었다. 2001년 코스타 강의차 시카고 근교에 있는 휘튼 대학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아서 홈즈(Arthur F. Holmes)에게 메일을 보내어 저를 만나게 했을 뿐 아니라 철학과 교수들을 모두 나오게 해서 서로 대화하는 자리를 주선하기도 하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에 웨슬리 선생님만큼 열심인 분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최근에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에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언급하면서 만나볼 기회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세 번째는 ‘카이퍼리안’(Kuyperian)으로서의 모범이다. 웨슬리 선생님이 나에게 책을 가져다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싶어 한 까닭은 그저 같이 만나 담소하고 같이 밥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어떤 영역에서 활동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주 앞에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활동하기를 원했던 ‘카이퍼리안’ 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나 나는 생각한다. ‘카이퍼리언들’을 나는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웨슬리 선생님만큼 열정을 가지고 카이퍼(Abraham Kuyper)와 그 후예들이 그토록 강조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의 총체성을 사람들에게 알게 할 뿐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살아내는 분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웨슬리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에게 늘 떠오르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네덜란드 신학과 교회 전통에 접했는지, 어떻게 카이퍼와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에 관심을 가졌는지, 어떻게 그 이후 세대에 속하는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나 니컬러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사상을 알게 되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웨슬리 선생님은 이 전통의 신학과 신앙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한 알의 밀알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믿고 사람들도 그렇게 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분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시고, 선배로, 친구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함께 웃고 함께 이야기하도록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웨슬리 선생님께서 하나님을 뵐 날까지 이 땅에서 건강하고 기쁜 삶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인이 되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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