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웨슬리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으니 지금부터 벌써 44년 전이다. 나는 당시 선교단체에서 하는 특강,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때 선교사님이 오셔서 IVP 책을 중심으로 유익한 서적들을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대학에 다녔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온 캠퍼스가 떠들썩하였고 그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관점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꾸준히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선교단체 형제들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 역사관, 정치관 등에 관한 책들을 읽고 밤늦게까지 토론하며 올바른 관점을 가지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대학 3학년 때에는 과학사 과목을 수강하였는데 과학사에 관계된 책을 읽고 요약문을 제출해야 했다. 나는 그때 선교사님의 소개로 네덜란드의 과학사가 호이까스(Reijer Hooykaas)의 ‘근대과학의 태동과 발전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에 관한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쓴 <칼빈주의>라는 책을 읽고 내가 평소 고민하던 내용을 너무도 명쾌하게 정리해놓은 것을 보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으로 근대과학에 기독교가 미친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생각했는데, 호이까스는 어떻게 종교개혁에 의해 태동된 개신교, 즉 성경적 기독교가 근대과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잘 설명하였다. 종교개혁 이전, 즉 중세까지는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여겼는데 반하여, 종교개혁 이후에는 창세기의 관점을 회복함으로써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연을 대상으로 마음대로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즉, 성경적 기독교의 회복은 바로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호이카스의 주장이었다. 나는 과학도로서 호이까스의 이러한 분석이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카이퍼의 책은 생각의 바다에서 방황하기 쉬운 대학 시절에 내 생각의 틀을 성경적으로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나는 당시 카이퍼의 책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영혼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역사, 예술, 가정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야가 활짝 열렸던 기억이 난다. 즉,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 즉 ‘주되심’을 드러내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유학의 길에 올랐을 때 미국에서 웨슬리 선교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코스타 사역이 시작되면서 미국에 들어와 그리스도인 유학생 사역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었던 선교사님은 동부를 오르내리며 유학생들을 만나 인명록을 데이터 베이스화 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셨다. 당시 맨하탄 브로드웨이와 110번가 사이 버거킹 옆에 있는 ‘다이너스티’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선교사님을 대접하였는데 남은 것은 따로 선교사님이 싸 가신 기억이 난다. 가끔 만날 때마다 과학과 종교의 문제, 교육 등에 관한 소책자, 정기간행물, 유인물들을 한 뭉치씩 들고 와서 보라고 하셨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라고 복사물을 한 뭉치씩 두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선교사님이 주신 책의 반의반도 읽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읽기 힘든데 또 주고 가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좀 부담이 되기도 하였지만, 한결같이 주시는 사랑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고물 자동차 뒤쪽에 책이 담긴 상자를 가득 싣고 다니며 형제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선교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에서 교육학, 문학, 심리학을 전공한다고 했다니 우리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고 그들의 전공과 관련 있는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더운 여름에 선교사님을 초대하여 함께 저녁 식탁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이들은 그때 이후 선교사님을 웨슬리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만날 때마다 몇 번인가 또 초대하겠다고 해놓고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사실 선교사님과의 교제는 언제나 선교사님이 먼저 연락을 주시고 찾아오시는 것으로 이어져 왔다. 규칙적이거나 잦은 만남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오셔서 며칠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꽤 시간이 지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지면 또 연락을 주시곤 하였다. 여느 어른들과의 관계 같으면 상대방도 한두 번쯤은 먼저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지 않으면 서운해하거나 연락이 끊어질 것 같은데, 선교사님은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으시고, 계속 베풀고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으시는 ‘주는 분’이셨다.
웨슬리 선교사님에게서 받은 책들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성경적 관점과 생각이 내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것을 보게 된다. 겉으로는 전혀 선교사 같지 않지만 뼈속 깊이 문서 선교사로서 한결같이 헌신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웨슬리 선교사님께 감사드린다. 56년을 한국의 그리스도인 지성인들을 위해 살아온 웨슬리 선교사님이 이번에 한국 국적을 받게 되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을 축하드리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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