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님께서 특별공로자로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신 일을 축하드린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정신을 배운 후학으로서, 웨슬리 선교사님에 대한 기억 3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1.
내가 웨슬리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선교사님은 수십 년 동안 그러셨듯이 대학원생들을 만나러 학교에 방문하셨고, 나도 인사를 드리며 과학교육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벽안(碧眼)의 선교사’로부터 내가 들은 첫 일성은 “너 참 쓸모없다!”(You are useless!)였다. 처음 뵙는 분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후로 선교사님을 꾸준히 알아가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나를 만나기 직전에 교육학을 비롯한 여러 전공의 대학원생들을 만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론적인 공부에만 함몰되지 않고 실제 삶과 가르침으로 신앙 실천을 보여야 함을 역설하신 직후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선교사님이 건네신 이례적인 인사(?)는 나에게 전혀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공부가 쓸모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사님께서 늘 진심어린 말과 행동으로 대학원생들을 권면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분에게 배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복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선교사님은 그때의 인사에 대해 “I'm sorry, my friend.”라며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나에겐 그때의 강렬한 기억마저 감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2.
웨슬리 선교사님을 뵈러 몇 명의 교육학 전공 대학원생들과 함께 신촌 IVF 사무실로 찾아갔다. 모임이 끝난 후에 다른 분들은 각자 일이 있어 헤어졌지만, 나는 웨슬리 선교사님께 저녁 식사 대접을 하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왔기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웨슬리 선교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끓이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구리판에 구운 불고기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그런 식당이 있어서 선교사님을 모실 수 있었다. 거의 30년 전 전주에서 먹어본 이후 처음이라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면서도, 그동안 어른을 잘 모시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기도 했다. 한창 식사를 하던 중 선교사님의 시선이 한 쪽을 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보시는지 여쭤보니 “저기 있는 노인을 보고 있어”(I'm seeing the old man over there)라고 하셨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는 식당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수염까지 백발이 성성하신 그분은 불고기를 양념에 재우며 섞는 작업에 집중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는 선교사님의 눈빛은 깊은 세월을 담고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던 밤에도 대학원생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계셨다던 선교사님은, 어쩌면 그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에서 젊은 날을 헌신한 자신을 보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3.
웨슬리 선교사님이 한국 국적을 수여 받기 며칠 전, 선교사님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조만간 서울대를 다시 방문해주실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미국의 모 기독교 학술단체를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다가온 국적 수여식에 대해서 여쭤보자, ‘명예 시민’(honorary citizen)증을 수여 받는 행사가 많이 긴장된다(anxious)는 말씀을 하셨다. 높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공식적인 자리에 서는 것이 익숙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선교사님은 우리 대학원생들이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에서 주최하는 크고 작은 행사들에서 늘 맨 뒷자리에 계셨다. 대학원생과 후학들을 앞세우면서, 정작 자신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잔치의 아랫자리에 앉는 삶을 실천하고 계셨던 것이다. 적잖이 나이가 드셨음에도 앞에 나서거나 영광스러운 자리가 긴장된다는 선교사님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선교사님께 국적을 수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예를 얻는 거고, 행사에 참석하는 다른 사람들이 긴장해야 할 거에요. 선교사님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해버렸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선교사님께 국적을 수여한 것은 법무부 장관이었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선교사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셔서 지내신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일 것이다.
조만간 다시 웨슬리 선교사님을 찾아뵙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웨슬리 선교사님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선배님과 그 과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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