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캠퍼스는 사회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되었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수식어는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 신문 1면 상단의 ‘취업사관학교’라는 광고야말로 대학과 사회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문구이다. 학생들에겐 서로의 화평이나 행복보다는 각자의 학점과 진로가 더 큰 관심사이다. 잘 지내느냐는 질문은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떻게 구직을 준비하냐는 질문으로 많이 대체되었다. 같은 길을 가는 비슷한 계층의 친구들끼리만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체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캠퍼스 생활과 공부가 좋은 상표가 붙은 증명서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함일 뿐인 것으로 전락했다. 사회적 갈등은 더욱 가감 없이 캠퍼스 안에서 재현된다. 캠퍼스 곳곳의 포스터와 대자보, 학내 커뮤니티는 극단으로 갈리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 사회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대화 없이 온·오프라인 공간을 나누어 각자 점거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자유지상주의·신자유주의’ 성향인 이들의 폭력적인 게시물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사회자유주의·여성주의’ 성향인 이들의 독선적인 주장들이 가득 펼쳐져 있다.
필자가 재학 중인 서울대학교는 이러한 상표성과 갈등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이다. 이는 극단적인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많은 학생, 심지어 일부 교수님들까지 ‘서울대’라는 자기 삶의 자리에 우쭐하여 자신만이 옳은 양 극단적인 이야기를 더욱 심하게 내뱉는다. 외부의 여러 세력도 ‘서울대’라는 상표에 세상이 감탄하다는 점을 노려 이 캠퍼스에 진출하고자 한다. 서울대 학생이라는 상표가 떨어지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질까 졸업을 연기하는 사회운동가들, 십 년도 더 전에 졸업하고선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을 포장하고자 학교를 들먹이는 이들 등.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한 1학년 3월, 이러한 캠퍼스의 모습들에 크게 실망했다. 세상과 구분되어 천천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리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오히려 세상이 집약된 곳이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언제쯤 ‘서울대’라는 상표를 활용하여 취직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수업을 듣는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부진하다는 것에 노심초사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술이 해방구로 보였다. 소주를 매일 3~4병씩 마셔댔다. 일요일 낮에야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소주를 사곤 했다.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술이 다 깨지 않은 채 과제를 하고, 수업에는 늦고, 교수님들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러면 나는 소주병에 비친 초록색 달만을 방향타 삼아 학교와 집을 오갔다. 이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 많은 학생이 학교에 실망감을 느낀다. 개중에는 여러 가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마는 이들도 여럿이다. 이들의 길은 다양하나, 삶의 소망을 잃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
이 기간에, 나는 다행히 캠퍼스를 떠나거나 나 자신을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좌절의 악순환 속에서도 대학교에 계속 붙어있었던 것은 캠퍼스 안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선배의 소개로 입학 즈음 인문대 기독인 연합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는 이 사람들이 좋았다. 다른 날들엔 학교에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문대 기독인 연합의 모임이 있었던 화요일만은 꼭 갔다. 아직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지만,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봄이 끝나가던 어느 아침, 회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밤새 소주 예닐곱 병을 마시고 집을 향하던 길이었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살려 달라고, 삶을 붙들어 달라고, 소망을 달라고 기도했다. 교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 공동체에서 들었던 기도들이 드디어 첫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삶을 바루어 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이겨 내보기로 했다. 실망스러운 캠퍼스의 여러 모습, ‘서울대’ 상표를 단 상품이 되길 바라는 주변의 시선은 하나님께 해결해달라고 기도로 구했다. 술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흘렀고,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인문대 기독인 연합의 대표를 맡아 새내기 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미약하지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 아주 익숙한, 자신이 살던 땅의 현실에 고뇌하다가 좌절하여 배에 오른 두 나그네가 있다. 한 사람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인물 이명준이며, 한 사람은 성서의 요나이다.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사이, 민족주의와 하나님 사이 등 둘이 갈등하고 실망한 내용에는 차이가 분명히 크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이 추구하던 진리와 현실의 갈등에 지쳐 끝내 세상을 등지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망망대해 가운데에 한 사람은 가라앉았고, 한 사람은 다시 바다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올라선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만두지 않았던 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고래가 그의 몸을 받아주었던 이, 요나이다.
대학 생활에 실망하고 방황하는 많은 이들은 이 두 나그네를 닮았다. 캠퍼스 주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 요나들을 받아줄 신앙인들이 필요하다. 또, 바다로 뛰어들고자 하는 이명준들이 기도하는 요나가 되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이 시대에도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기도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 복음화와 신앙인들의 모임을 위해 섬겨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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