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그리스도인 정치, 과연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정치> / 짐 월리스 / 정성묵 역 / 청림출판 / 2008.
<하나님의 정치>는 시간을 되돌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막 대통령에 당선된 2008년, 한국에 소개되었다. 책을 둘러싼 겉표지 띠지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이명박 정부에 필요한 정치학 교과서” 이 책의 저자는 흔히 복음주의적 좌파 신학자, 정치운동가로 분류되는 짐 월리스(Jim Wallis)로, 이 책은 미국에서 2005년에 출간되었다. 섹스 스캔들로 무너졌던 빌 클린턴을 대신해, 하나님의 정의를 미국에서 실현시키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 시대. 결과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21세기 현재 전 세계에 전쟁과 테러의 혼란을 불러오고, 복지 정책을 뒷전으로 하고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시대. 이 같은 일련의 역사 속 풍경은 우리나라의 어떤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정확히 그러한 시대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월리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언한다. 첫째, 하나님은 공화당의 하나님도, 민주당의 하나님도 아니다. 특정 정당만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정치에서 배제하려 하는 세속주의도 버려야 한다. 둘째, 성경에서 말씀하는 공의와 정의의 절반 이상은 소외된 자를 향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정치란, 반드시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일관된 생명 윤리’를 지향해야만 한다. 즉,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 있다고 해도 전쟁은 생명을 경시하는 일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또한, 중범죄자에 대한 사형 역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 대신, 소외된 자를 개인적으로, 문화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충분한 복지 예산을 통해 도와야만 한다. 더 나아가, 선진국은 반드시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복지를 충분히 지원해 주어야 한다. 셋째, 우파 기독교계에서 흔히 정치•윤리적 쟁점으로 제시하는 동성애나 낙태 문제 등은 성경에서는 오히려 소외된 자에 비해 크게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우파 기독교계가 인종•빈부 문제의 구조적 해결에는 침묵하면서, 동성애나 낙태에 대해서만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화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그리스도인 시민들이 직접 기도와 사회 운동을 통해 사회 전체 분위기를 바꿈으로써 이루어야 한다.
이 책은 상당히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윌리스의 명쾌한 비전, 그리고 이를 위한 그와 동료들의 눈물겨운 간증이 섞여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또한, 2022년 현재에도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특정 정당과 그 정책에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압력을 기성세대로부터 알게 모르고 겪고 있는 필자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방감을 지나면, 특히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이 책의 주장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첫 번째로, 최소한 겉으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포장하는 대다수의 미국 정치인들과는 달리, 아마도 이명박 시대 이후로 대한민국에서는 스스로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는 거물 정치인들은 사라졌다. 심지어는 5년 전에도, 지금도, 사이비 종교나 무속 등이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신앙과 별개로 생각할 수 있을까?
두 번째로, 세계 초강대국이어서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의 정세를 주무를 수 있는 미국과는 달리, 아직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는 북한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립이 끝나지 않은 상황을 그간 소위 우파와 좌파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해 왔으며, 그 결과는 대한민국과 기독교에 상당히 파괴적일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이 ‘일관된 생명 윤리’ 하나만을 정치의 유일한 잣대로 세울 수 있을까?
세 번째로, 윌리스가 ‘일관된 생명 윤리’를 위해 부차적인 문제라고 치부한 것, 또는 윌리스가 제시한 대안 중에는 필자가 보기에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우선, 중범죄자도 인간이기에, 그리고 인간의 사법 시스템은 항상 잘못될 수 있기에 사형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신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는 무기징역을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중범죄자에 대한 무기징역 수감의 경우, 대부분 심각한 인권유린이 일어나거나, 반대로 엄청난 운영비(세금)를 필요로 한다.
네 번째로, 빈부 문제와 여성 폭력 문제와 어느 정도 연관된 낙태와는 달리, 동성애는 미국에서도 빈부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지역과 세대에서 주로 일어나는 문제이며, 따라서 복지 강화가 반드시 동성애를 약화시킨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윌리스는 결혼이 시민의 기본 권리(공민권)이므로, 동성애자에게도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라면, 실제로 동성애자들이 최종 목표로 삼는 결혼 시스템에 관한 교육, 자녀 양육 등 다양한 요소에 관한 완전한 공민권 허용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윌리스가 동성애 결혼 반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성간 결혼 및 공동체성의 장려가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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