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정치화되지 않은 정치적 신앙을 상상하기
<복음주의 정치 스캔들> | 로날드 사이더 | 김성겸 역 | 홍성사 | 2010
“널리 수용 가능한 체계적 복음주의 정치사상의 부재 탓에 정치 활동의 모순과 혼란 및 비효율성을 비롯하여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행태까지 일어나고 있다.”(18면)
복음주의 신학자 로날드 사이더(Ronald J. Sider)는 2008년에 위와 같은 문제 제기를 담은 책을 썼다. 복음주의자라면 누구나 정치적 사안들에 적용하여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체계적 복음주의 정치사상’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이해하는 정치에 대한 복음주의적 접근은 다음과 같다.
“정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정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공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정치 활동을 해야 한다.”(18면)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권위를 향한 헌신이 곧 특정 법안과 후보에 대한 지지, 반대 등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사이더는 그 대답으로 정치적 결정의 네 요소를 제시했다. 규범 체제(성경적 세계관),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연구, 정치철학, 특정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정치적 결정의 네 요소 중 규범 체제와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정치의 주요 요소들(정의, 인권, 국가, 결혼, 전쟁, 종교의 자유 등)에 관한 복음주의적 정치사상을 각각 제시한다. 인상 깊은 것은, 그가 모든 장마다 성경적 원리를 중심에 두고 현대 미국의 이슈를 다루고, 그 함의와 접점, 적용점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주의자들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경적 원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가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왔던 정치적 체제와 가치는 모두 저마다의 약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정치적 체제의 약점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21세기의 한국을 사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먼저, 성경적 원리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려는 그의 관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는 성경과 정치를 겹쳐놓고 보지 않는다. 세상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은 많다. 정치는 부차적이다. 성경적 삶과 정치적 삶을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사이더에 따르면, 모든 현존하는 정치체계들은 궁극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다. 한국 사회는 미국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복음주의자는 그러한 체제를 절대시하거나 수호할 무언가로 보기보다는, 성경에 비추어 봤을 때 드러나는 결점들을 성경적 정치적 삶으로 보완하려고 해야 한다.
이런 사이드의 견해는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사이드는 2000년대 초반 미국 복음주의의 문제를 ‘통일된 정치사상의 부재’라고 보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복음주의의 문제는 ‘파편화된 정치사상과 과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정치사상의 과잉을 목도하는 중이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확고한 정치적 판단의 신학적 기반이 다수로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기반들이 파편화되고 상호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20대 대선을 통과하며 기록적인 투표율과 양당 간의 팽팽한 배타적 대립을 동시에 목격했다. 이 두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일종의 정치적 환원주의, 말하자면 ‘일상의 정치화’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화된 일상 속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 외에는 상상할 수 없다. 한편이 살면, 다른 한편은 죽는다. 한편이 웃으면 다른 한편은 운다. 정치화 된 일상에 함몰된 채 한편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다른 한편에서는 참혹한 미래를 오늘의 기분으로 당겨온다.
‘신앙의 정치화’ 역시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사이더는 모든 복음주의자에게 묻는다. “정치에 실패하면 큰일이 나는가?” 그는 그렇지 않다고,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답한다. 정치보다 더 크고 중대한 삶의 소명이 존재한다는 선언과 깨달음이 오늘날 한국 사회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요하다. 복음주의는 오늘날 한국 정치에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정치화되지 않은 정치적 신앙’을 얼마나 상상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C. S. 루이스도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마리탱(Jacques Maritain)은 기독교가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을 암시했습니다. 비국교도들이 현대 영국사에 영향을 끼친 이유는 비국교도 정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국교도의 양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모든 정당이 그것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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