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우리 시대 부모들은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해 안달이다. 금수저는 영어에서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차용한 말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은 숟가락을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니며 자신이 토지를 소유한 계급임을 보여주곤 했다. 금수저가 아니기에 느꼈던 박탈감은 중세 유럽부터 시작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한국에도 계속되는가 보다.
금수저든 은수저든 명백한 한 가지 사실은 부모가 충분히 가진 것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부동산이 있어야 자식에게 상속시킬 수 있다. 음악인들 알고 보면 부모 중 한쪽은 취미로라도 음악을 한 경우가 많다. 식사 매너가 있는 부모를 둔 자녀는 음식을 씹을 때 수저를 내려두고 손을 식탁 아래로 내린다. 나에게 충분하게 넘쳐나서 의식하지 않아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 상속은 문화처럼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정체성
인간은 하루에 3만 5천 번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한다. 이중 약 1% 만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99%는 직관을 사용한 ‘Fast thinking’을 따른다. 이때 우리는 피곤한 의사결정에 뇌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단순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이때 정체성이라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평소 자신을 ‘초밥 킬러'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새로 생긴 동네 초밥 집에 눈길이 자동으로 간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춘기'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아이의 못된 행동을 슬쩍 합리화한다. 자신을 ‘수포자’로 인식하는 학생은 수학 공부 안 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빠르게 정당화한다. 그래서 ‘흙수저’라는 정체성을 함부로 인정해서도 함부로 부여해서도 안된다. 소중한 한 인생의 99%에 박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저보다 그릇을
부모가 가장 쉽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돈이다. 상속세나 증여세가 있지만 그것도 결국 돈이다. 반면 지적 유산을 물려주기란 쉽지 않다.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의사 부모나 변호사 부모가 의사 자격증이나 변호사 자격증을 자녀에게 물려줄 순 없는 법이다.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이 일찍부터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고소득도 고학력도 아니어서 물려줄 수저가 없다면? 차려진 밥상에 얹기만 하는 수저를 주느라 애쓰기보다는 좀 더 담대하고 배포 있게 그릇을 물려주는 것은 어떨까?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성경은 금, 은, 나무, 흙 등 재료가 무엇이든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면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다고 한다. 그릇을 관리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정체성은 무의식적 선택 또는 일상의 반복된 습관으로 표현되고, 습관의 반복성은 다시 정체성으로 굳어진다.
습관 형성을 통한 정체성 물려주기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해 안달하기보다는 일상의 거룩하고 깨끗한 습관 형성을 통해 아이들에게 귀하고 선한 일에 사용되는 그릇을 만들어주자. 오래된 일이지만, 미국 교육부가 모범가정으로 선정하였던 고광림, 전혜성 박사 부부는 남편이 롱아일랜드 대학 출강을 위해 새벽 3시 52분 기차를 타야 하는 시절, 가족 모두 새벽형 인간이 되어 새벽 3시에 가족 식탁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부모는 유대인 가정교육 방법을 응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정 안에서 실천하며 여섯 자녀 모두 미국 주류사회 리더로 키워냈다. 박사 부부의 거창한 성공 사례가 아니어도 좋다. 손끝이 심심해도 자녀들 앞에서는 스마트 폰 사용하지 않기, 하루 한번, 안되면 일주일에 한 번은 깨끗하고 신선한 음식으로 예의와 격식을 갖춘 가족 식탁 교제 가지기, 자녀와 대화할 때 눈을 보고 경청하며 존중하기, 하나님을 능동적으로 섬기기 위해 매일 30분 유산소 운동 또는 10분씩 근력 운동을 하여 몸을 단련하기 등의 일상 습관은 곧 부모 자신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그릇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고귀하다. 그런데, 자신이 보유하지 않은 자원을 자녀에게 물려주고자 할 때 부모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갈등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엄마, 아빠는 안 하면서 왜 나만 해야 하냐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자녀가 게임중독에서 독서광으로 빠르게 변화하길 원하는가? 자신의 진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정진하길 원하는가? 말로 하지 말고 보여줘라. 인간은 외부 세계의 70% 이상을 ‘시지각’(visual perception)으로 처리해버린다. 즉, 귀가 아닌 눈으로 배운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많이 보여준 부모의 말에는 권위가 있고 그들의 행동은 대담하다.
하나님은 바울을 향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행 9:15). 바울은 복음을 질그릇 속의 보배라고 했다(고후 4:7). 우리도 이제 숟가락보다는 좀 더 큰 그릇에 관심을 가져보자. 금과 은이 아닌 토기장이의 질그릇도 좋다. 흙이 왜 나쁜가? 천연적(Organic)이어서 좋지 않나? 재질이 뭐든 그 안에 좋은 것, 능력 있는 것을 담으면 된다. 거룩하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선한 그릇은 배고픈 무리에게 퍼주어도 계속 차오르는 열두 광주리와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그릇의 정체성을 물려주기 위해 부모된 우리가 먼저 깨끗하고 단정한 일상의 습관으로 빚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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