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 세계관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은혜의 개념이다. 은혜에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인간의 삶에 하나님이 선물처럼 다가오셔서 선물 같은 구원, 함께 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은혜이다. 일반적인 현대의 세계관이 신과 타인에게 닫힌 상태로 오직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만 집중하여 발전과 성장을 이루려는 모습임을 비교할 때, 은혜의 개념은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은혜의 감각을 상실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을 오직 자신으로만 채우려고 한다. 그 결과, 피로와 불안 그리고 자기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자기 삶의 공간을 오직 자신으로만 채우도록 하지 않으셨으며 관계 속에서 서로를 채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상품을 소비하고 구입하는 감각의 느낌으로 깊은 우정과 친밀감을 통한 쉼을 대체하는 모습, 부족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용서하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이웃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며 오직 완벽주의로만 향하는 모습,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만남 속에서 지나친 통제와 주도성과 더불어 타인에게 승리자가 되려는 욕망, 현재 자신의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결정론 등은 은혜의 감각을 상실한 모습이다.
청소년 시기는 어른이 되는 과정의 시기이다. 여기서 어른이란 생물학적 나이의 어른만을 뜻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은혜를 서로 경험하게 하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이들이 어른인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이루어지는 교육들은 사회에 잘 적응한 생산자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교육들은 자신을 발견하여 적절한 직군과 직무를 찾아 그곳에서 생산성을 창출하여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관계 속에서 은혜를 적용하는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못 가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서 만남은 위험하고 가급적 피해야 할 무엇으로 인식되는 시기에, 은혜의 감각을 익히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또한 생활세계를 잠식한 유튜브를 통해 욕망이 무한히 발산되고 타인을 만남이 아닌 청중으로 전환해 버린 상황은 은혜와 관계의 감각을 더욱 무디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기독교 교육에 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더욱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은혜의 감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관계 속에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치감이 친밀감으로 바뀌는 경험이다. 이 둘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체험이다.
첫째 관계 속에서 사건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만남을 통해서 내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삶의 유익과 통찰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서도 자신이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관점과 방법을 얻는 것도 이에 해당하지만, 청소년들이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경청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 같은 유익을 경험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나의 문제는 오직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옆 친구의 이야기 속에 내가 발견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는 친구와 내가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경험이며,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긴장과 자기방어가 아닌 깊은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발견이다. 그리고 이는 나의 삶의 공간이 오직 내가 다 채우는 것이 아닌 만남과 관계로 나를 넘어선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에 참석하는 청소년들이 목회자나 교사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자리 배치나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수치감이 친밀감으로 변화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모험과 실수를 나누기 시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모험과 실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왜 수치감을 동반하는가? 수치감은 보이지 않는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기준점이 사회나 가정 어디에서 형성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와 타인을 쉬지 않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자신은 기준점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패감과 수치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외부의 압력이 아닌 스스로 원해서 선택하고 행동한 모험과 그로 인한 실수 등은 늘 수치감을 동반한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왜 이러한 것을 해서 나의 부족함만을 드러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하지 않던 그림을 그린다거나 선물을 사지 않고 만들어준다거나 늘 먹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먹는다거나 등등의 모험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고 수치감을 동반할 수도 있다. 더욱이, 최선을 다해서 한 공부나 활동이라도 수치감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험과 실패감을 친구들과 나눌 때 수치감이 친밀감으로 바뀔 수 있다. 불완전한 나의 모습은 어떤 기준으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이들을 통해 이 모습은 나의 진심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조소 섞인 평가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모험과 실패를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의 존중을 경험하게 된다. 숨겨주었던 나의 수치감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고 다른 사람의 숨겨둔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어 서로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관계 속에서 선물처럼 좋은 것으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통로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타인이 발견하는 문이고, 타인의 숨겨둔 이야기를 만나는 계기이며, 슬픔이 웃음이 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나 교사가 자신의 수치감을 진솔하게 나누며 모험과 실수를 나누는 이들에게 안정감과 따뜻함 그리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법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잘못이 있다면 권면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중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안정감도 제공한다면, 실패나 죄책감을 홀로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좋은 것으로 바뀔 수 있는 은혜의 관계와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은혜’라는 의미가 “은혜받았니?”라는 격정적인 감동으로만 통용되지 말아야 하며,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경험을 하여 이 시대를 은혜로 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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