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교회에 아이들이 줄고 있다. 당장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만 봐도 집 안의 어른들은 나오는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성도님들의 자녀들이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에서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은 왜 이렇게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신앙이 잘 전파될 수 있었을까”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현재 한국 기독교의 아동•청소년 신앙교육이라는 문제 해결에 약간의 실마리는 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요즘 캠퍼스 연구실에서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보통 밤 열두 시 정도가 된다. 그 시간 동네 대부분의 집에는 불이 꺼져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예외다. 아주 환하다. 그 이유는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밥을 주시는 것을 당신의 사명으로 생각하신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 집에 와서 야식을 먹는 것을 몇 번 보신 후, 이제는 매일 야식을 챙겨주시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하루의 마지막 일과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는 항상 배고픈 것이 아니기에 배가 고프지 않다고 여러 번 항변하여 보았지만, 할머니는 심지어 내가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해도 깨어계셨고 먹을 것을 주시고 나서야 편히 주무셨다. 그렇게 나는 야식을 먹고 할머니가 이불에 누우시면 나도 할머니 옆에 눕는다. 그러면 하루 동안 세상에서 쌓였던 때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잠자리로 갈 때 할머니 볼에 뽀뽀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뺨을 만지시며 “내 새끼 잘 자라”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특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증조부가 되시는 할머니의 아버지께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는지 너무 많이 들었다. 외증조부께서는 호주에서 온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복음을 듣고 그는 “이렇게 좋은 종교가 어디 있나?”라고 생각하셨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교회에 나가시다가 성경이 아궁이 불에 여러 번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는 몰래 밤에 담을 넘어 다니셨다고 한다. 할머니 이야기의 마지막은 언제나 다음과 같다. “네 신앙은 4대의 신앙이다. 네가 애를 낳으면 그 아이는 5대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 내가 감히 다른 마음을 품겠는가? 나는 내 자식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너는 5대다. 네가 애를 낳으면 그 아이는 6대다.”
할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의 친동생, 그리고 사촌들 모두 할머니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신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때 나의 사촌들이 교회에서 멀어졌던 적이 있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던 할머니의 말씀 때문에, 발걸음을 교회로 다시 돌렸다. 한편 엄마는 할머니의 막내딸로서 어렸을 때 내가 잠들 때면 거의 매일 나와 동생 손을 잡고 오랫동안 기도하셨다. 나는 쉽게 잠들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덕분에 엄마가 기도할 때 굉장히 많이 우셨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를 통해 울음이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돈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하는 때임을 서서히 배워나갔다.
나의 유년 시절은 구름 없는 날씨와 같았다. 따라서 고등학교 시절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우울증은 나 자신을 너무도 낯선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전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교실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장난도 치곤 했는데 우울증 상태 속에서는 친했던 친구들과도 굉장히 어색했고 사람들이 그저 두려웠다. 나는 결국 엄마에게 정신과 진찰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신앙에 의지하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내 문제가 신앙과 관련이 없는 의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교 1학년 여름, 우울의 터널에 갇혔고, 그 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전혀 뜻하지 않게 할머니와 엄마의 신앙이 아닌, 나 자신의 신앙을 얻게 되었다. 나는 CCC 수련회에 참석하여 누가복음 11장을 묵상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그 구절이 너무나도 나를 위한 말씀으로 느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큰 사랑이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고통 속으로 이끄셨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내게 그러한 위기가 없었다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믿는 자아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 엄마가 만일 나를 정신과에 데려갔다면 어땠을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약물과 의사를 더 의지하며, 하나님 외에는 아무 대책이 없는 극한의 상황까지 갔을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는 이렇게 해서 구원이 세상 것을 의지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도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신앙은 할머니와 엄마의 유산이다. 따라서 나는 가정 속 신앙교육의 회복이 현재 우리 기독교의 아동•청소년 신앙교육 위기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서처럼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장차 내 가족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이와 동시에 명시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엄마가 그랬듯이 진리는 바로 성경의 복음에 있음을 나 스스로 철저하게 확신하고 그것만을 붙잡도록 가정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음 세대는 모든 가정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가정에서부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할머니의 하나님, 엄마의 하나님께서 그분들에 이어서 나를 만나주시고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반드시 그렇게 하시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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