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볼 때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본다. 일반 안경과 ‘세계관’ 안경의 차이는 일반 안경은 안경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지만, ‘세계관’ 안경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안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조금씩 만들어진다. 그것도 내가 속한 세계,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세계는 ‘가정’이다. 아이에게는 ‘가정’이 곧 ‘모든 세계’가 된다. 그러다가 아이는 커가면서 세계의 폭을 넓혀간다. 어린이집, 학교, 학원, 친구, 교회, 미디어 등. 이 모두가 세계를 넓혀가는 수단이자, 새로운 세계가 된다. 이 세계들을 사회학적으로는 ‘사회화 기관’이라고 부른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데에 여러 가지를 학습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아이는 이 사회화 기관에서 학습하며 ‘세계관’ 안경을 만들어간다.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가 주고받는 말을 통해, 친구들과의 교제와 교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이 세계들이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치들을 줄곧 이야기해왔다면, 아이는 어떤 안경을 쓰고 있을까?
얼마 전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였던 <소년심판>을 보았다. 드라마에서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는 서로 핏대를 세우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범죄자를 만들기 위해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부장판사.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배석판사. 사실 둘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 같지만, 사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어른들이 제때 잘잘못을 알려주었다면, 그리고 아이가 만나는 각 세계가 올바른 가치들을 이야기했더라면, 아이는 올바른 가치관 내지는 세계관을 가졌을 것이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앙공동체였다. 믿음의 가정들끼리 모여 살다 보니 신앙, 유대교, 하나님은 당연한 것들이었고, 자신의 가정에서 미처 채워지지 않는 신앙교육의 부분도 자신 옆의 이웃 가정과 사회 공동체가 채워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공동체로 모이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신앙교육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그저 일주일 7일 중 하루, 그것도 2시간 남짓의 교회학교에만 우리 자녀를 맡기고, 일주일의 반 이상이 되는 5일은 기독교 세계관이 없는 일반 학교에 우리 자녀를 맡기면서 신앙교육과 기독교세계관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우리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기독교 학교’에 보내야 할까? 나는 9대 1로 ‘그렇다’라고 말하겠다. 우리 자녀가 ‘교회 출석자’가 아니라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이 확립된 자녀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가능한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많은 부모는 자녀의 지식이 부족할 때 학원을 보낸다. 그런데 왜 신앙이 부족하면 과외를 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물론 신앙 과외를 하는 곳이 없기도 하고,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이 지식적으로 혹은 짧은 시간에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의 마음과 열정을 왜 쏟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독교 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학부모는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 자녀는 기독교 세계관이 확립된 아이로 잘 자랐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건강한 가정 공동체와 가정 외의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 달이 30일이라고 하면, 1일에는 자녀 반에 있는 1번 학생을 위해, 2일에는 2번 학생을 위해,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 자녀의 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자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자라날까? 엄마의 모습을 통해 중보 기도를 배우고, 다른 이의 자녀도 내 자녀와 같이 여기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즉 ‘가정’이라는 세계를 통해,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아이의 ‘기독교 세계관’ 안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또 거기에는 주변의 다른 믿음의 이웃 가정이 있었고,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에 또 가능한 것이었다.
글을 쓰는 내가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라서 홍보를 목적으로 ‘기독교 학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우리 자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만한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입학 상담을 하며 한 친구가 하나님을 알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갔던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며 “우리 학교가 너에게 그런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함께 알아보자”라고 이야기했다. 아침 Q.T. 시간에 나눔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겠다”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너무 예쁘고 귀한 고백이지만, 막연하다. 거기에 나는 질문 하나를 더 던진다. “어떤 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거 같아?”, “어떻게 하는 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걸까?” 그러면 아이들의 생각 회로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게 ‘기독교 세계관’ 안경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닐까?
가정이든지, 학교이든지, 교회이든지 아이들에게는 함께 신앙을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삶으로 풀어낼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자녀에게는 그러한 공동체가 있는가? 반문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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