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다섯, 넷, 셋, 둘, 하나, “해피 뉴이어!” 모두 함께 외치는 ‘카운트다운’에는 지나간 한 해의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의 설렘이 담겨 있다. 하루, 한 달, 일 년, 무언가를 맺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 체계가 참 감사하다. 그리고 이 감사를 ‘기독교 학교’ 교사는 더 많이, 더 깊이 누릴 수 있다. 한 해, 한 학기, 한 교시, 언제라도 무엇을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며 같은 수업일지라도 같은 날이 하루도 없다. 매일 새롭고 즐거운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나의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무너지는 마음을 꼭 부여잡으며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었고, 눈물을 꾹 참고 아무렇지 않게 교단에 서야 할 때도 있었다. “고난이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라는 말이 무섭게 나의 그릇은 무던히도 깨졌고, 끝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사실만 붙들고 버티기도 했다. 그리고 교사로 9년 차를 맞이한 올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을 누리며 일터에서의 삶을 돌아본다.
지난 4월 고난주간의 끝에 성금요일 예배가 있었다. 평소의 공동체 예배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들의 예배를 세워주느라 나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학생들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곤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이 자는 것인지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인지 잘 분별해서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학생을 발견해도 고개가 떨구어지지 않으면 깨웠을 때 억울함을 호소하기 때문에 “제발 스스로 눈을 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기다리기도 했다. 이날은 오랜만에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데, 학생들이 앞에서부터 채워 앉다 보니 교사들은 자연스레 뒤에 따로 자리하게 되었다. 살필 학생이 없어서인지 성금요일 예배여서인지 찬양의 시작부터 은혜가 가득했다. 그리고 문득 이 상황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 이렇게 뜨겁게 찬양하고 울며 기도할 수 있는 일터라니! 대학생 때 스치듯 지나가며 기도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소한 바람도 흘려듣지 않으시고 이루셨다. 기도하고 싶을 때마다 갈 수 있는 예배당이 있는 그곳, 내가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고백하며 믿음이 더해가는 그곳,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매일 성장하는 그곳, 그곳이 나의 일터다.
교사를 하며 얻는 가장 큰 유익은 학생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학교는 우리 인생의 목적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훈련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배움터다. “선생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선생님 오늘 머리를 이렇게 한 거 너무 예뻐요, 선생님 수업이 너무 좋아요, 설명을 꼼꼼히 해주셔서 이해가 잘돼요.” 학교에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나눠주는 학생들이 많다.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게 학생들은 마음을 표현하며 깊어지는 관계를 알려준다.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과학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 이것저것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수업 방법을 적용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수업 후에 학생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오랜 시간 고민하며 준비한 내용보다 수업 시간 건넸던 학생을 향한 시선과 사소한 언어였다. 직접 만들어보았던 구름 발생 실험보다 과학실 가는 길에 관찰했던 구름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와 질서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과학 수업의 목적이라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가고 나의 ‘나 됨’을 알아가는 과학 수업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모의고사만 보면 이것저것 질문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학생이 있었다. 아는 만큼 대답을 해주고 교과 선생님과 연결을 해줘도 매번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학생에게는 공부 방법에 대한 답변도 필요했지만, 마음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틈만 나면 고민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보며 학생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다 문득,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도 제목 앞에 선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올해 처음 만난 학생도 나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부족한 머리를 짜내고 더 해줄 것이 없을지 생각하는데, 하물며 나를 지으시고 아버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도움 요청에 어떻게 반응하실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인생의 길에 마주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의 순간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을 전환해본다. “학생이 나에게 이런 일을 상담한다면 나는 어떻게 답을 해줄까?” 그리고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이상적인 대답, 그대로 내가 하면 된다. 무엇이든 ‘매뉴얼’대로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탓에, 학생들이 아침마다 하는 QT도 학교에서 안내해준 그대로 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했다. 교사 1년 차, 묵상을 한 글자도 쓰기 어려워하는 10학년 학생이 있어서 함께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12학년이 된 그 학생이 자기주도학습 교실에 오자마자 성경책을 꺼내 QT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닦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성장시키시는구나.” 그날 이후 하나님의 때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을 따라온 이곳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대기권과 날씨’ 수업 준비를 위해 찾은 말씀을 살펴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나의 삶 구석구석이 오롯이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욥 28: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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