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필자는 미술대학에 입학했을 때 전공에 대한 기독교적 자세를 숙지하지 못한 채 실기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현대미술을 배웠다. 신나는 시간이었으나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문화명령과 문화변혁론 등을 알고 있었더라면 젊은 시절의 방황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문화예술의 영향이 과거보다 훨씬 심대하다. 혼자 버텨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 힘이 막강하다. 한때 기독교적 가치에 지배를 받던 문화가 이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심각한 영적 도전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이다. 우리의 반응은 거기에 참여해서 바꾸든지 또는 외면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분명한 사실은 외면한다고 해서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처럼 현재로서는 참여하는 길이 선택지로 남아 있다. 그냥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을 영화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 활동으로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은 문화의 전도된 양상이다. 젊은 세대에게 세상과 신앙의 관계, 문화와 복음의 관계를 가르치고 삶의 현장에서 소통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팁을 주어야 한다.
요컨대,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공해 무분별한 문화의 수용자가 되기보다 비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에 대한 훈련을 받으면 영적 분별력도 생기고 왜 그들이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특질을 충분히 숙지하고 향유하는 것 그리고 그런 성찰 없이 세상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로크마커(Hans Rookmaaker)는 예술의 영역도 예외가 아님을 이렇게 밝힌다.
“예술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큰 기쁨을 주고 삶의 아름다움을 증진하기에 우리 삶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과 접촉시키고, 따라서 현대미술을 통해 우리는 동료 인간들의 노력과 우리 시대의 정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의 모든 아름다움과 하나님이 주신 선함에도 존재하고 심지어 죄와 죄악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현대에 대한 우리의 통찰을 깊게 해줄 수 있다.”
예술은 얼마나 무수한 일이 사회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준다. 물론 성숙단계에 있는 청소년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세상에는 무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시하게 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문화가 거룩하지 않다고 해서 그 문화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 하나님 형상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문화 활동을 추구한다. 다양한 인간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 됨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예술 교육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공감 능력’의 향상에 있다. 가령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을 본다고 치자. 그의 작품에는 십자가도, 예수님도 등장하지 않지만, 서민들의 생활상이 함축되어 있다. 작품을 보며 성스러움은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안에 내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일상생활은 우리를 쉽게 지치고 피곤하게 하지만 자기희생과 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를 날마다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세계관을 내포한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사실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줄 수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문화를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공감’을 바탕으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피터 바잘게트(Peter Bazalgette)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일반 학생들보다 예술 교육을 두 배 이상 받은 학생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젊은 시절부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20퍼센트가 더 높았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문화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작품을 본다는 것은 좁게는 타인의 삶을, 넓게는 시대의 가치를 엿볼 기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예술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바라보고 공감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공감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곧 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길이라고 말한 리처드 마우(Richard Mouw)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권순응의 <코로나 이후 교회 교육을 디자인하다>(2020)에 따르면, 팬데믹의 여파로 교회학교는 ‘쇠퇴를 넘어 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애물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예술의 접촉을 통해 그것의 유익을 발견하고 이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격리된 문화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고 모든 문화권으로 가라고 부름을 받았다. 문화명령은 본질상 종교적 의무이다. 청소년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훈련받는 일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임박한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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