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난 연말에 한국 리서치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종교들에 대한 호감도에서 개신교는 100점 만점에 31.6점을 얻어 불교 50.4점, 천주교 50.7점에 비해서 크게 낮았다. 무종교인들은 개신교에 21.9점을 주어 불교 49.7점, 천주교 48.2점의 절반도 되지 못했고, 30%는 4점 이하의 낮은 점수를 주었다. 한국 교회는 길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맛 잃은 소금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수는 없고 항상 얻지도 못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그리 객관적이고 공정하다 할 수도 없다.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의 세계관과 다르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에 쉽게 동조하거나 동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리며 세상이 섬기는 우상을 배격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기가 쉽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유다와 지중해 지역의 초대교회가 그랬고 지금도 핍박과 비난을 받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과 핍박은 오히려 교회의 영광이다. 한국에서는 개신교가 최대 종교로 성장했고 사회의 중요한 자리에 그리스도인이 많기 때문에 세상의 경계와 질투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가 이 정도로 불신을 받게 된 것은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거나 세상의 시기를 받아서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세상의 정당한 기대를 한국 교회가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 5:16)라고 명령하셨고, 베드로도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라고 말씀했다. 그리스도인이 착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세상 사람들도 기본적인 양심이 있기에 우러러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불신을 받는 것에는 정당한 핑계가 많지 않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비록 교세는 약했지만 세상의 신임은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고 불신자들은 “그런 힘이 어디서 오는가?” 하고 놀라워했다고 장기려 박사가 회고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법정에서 피고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변호사가 주장할 정도였다 한다. 1950년대까지 한국 교회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성자들이어서 교인들의 존경과 세상의 신임을 받았다. 1988년에서 1992년까지 교육개발원장을 역임한 신세호 박사는 자신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자기 자녀들은 교회에 보낸다 했다. 교회에 다녀야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했기 때문에 세상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고 그런 긍정적 평가가 한국 교회 성장에 크게 공헌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룩한 성장이 오히려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교인 수, 헌금 액수, 사회와 정치에 대한 영향력 등이 커져서 한국 최대 종교로 부상하게 되자, 많은 자칭 교회지도자들이 부, 사치, 인정, 권력 같이 세속적인 것들에 맛을 들였고 그것들을 가져다주는 교회 성장을 우상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 말씀을 순종하고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인 수 늘어나는 것이 목회 성공의 기준이 되었고,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비신사적이고 비윤리적인 수단까지 동원했다. 대형교회 목회자 세습이 감행되고 교단장과 교계 단체장 선거에 부정이 저질러졌다. 거기다가 ‘코로나19’ 전염병은 한국 교회에 치명상을 입혔다. 환자들을 돌보고 방역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대면 예배의 권리를 요구하고, 대면 예배를 고집하다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되기까지 했다. 대구 동산병원은 자진해서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어 환자들을 정성껏 돌본 결과 불교재단의 만해상까지 받은 것을 보면, 성경이 가르치는 데로 사랑을 실천하면 사회, 심지어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 대부분은 아주 당연한 이 임무 수행을 게을리함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불신과 무시만 받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비판하고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믿고 알아도 소용이 없다. 정직하고 신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십자가의 도에 충실해서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 사도들, 성 프란시스, 장기려처럼 가난해지고 모든 것을 주어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절제하고 조금이라도 덜 사치해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개신교가 한국 최대 종교라면 정직하고 공정해서 세계 최하 수준의 사회적 자본(167국 가운데 147위)을 끌어올려야 한다. 정치에 기웃거리지 말고 이념의 우상을 배격함으로 갈라진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이미 제대로 고쳐보려고 몸부림치는 깨어있는 그리스도인과 공동체가 없지 않다. 이들 그루터기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라야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임도 회복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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