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20년 8월 여덟 개의 개신교 언론사(CBS, CTS, CGN, Good TV, C채널, 극동방송, 국민일보, 기독신문)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급격히 확산하던 시기였다. 감염병 통제를 둘러싼 ‘정부, 사회의 요구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묻는 문항에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74.5%였다. 전체 인구 열 중 일곱 이상이 한국교회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질문에 대한 개신교인의 응답에선 차이가 크다. “잘하고 있다”가 53.3%, “잘못하고 있다”가 41.9%로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가 절반을 넘었다. 조사 결과를 보도하던 YTN 변상욱 앵커는 이렇게 덧붙인다. “개신교의 추락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합니다.”
개신교인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세속사회로부터 멀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교회가 세상의 목소리로부터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 세상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을 읽어내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새삼 깨닫는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눈치를 보거나 그 입맛에 맞추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세속의 가치 혹은 세계관과 타협하거나 절충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가 세상의 환심을 사는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분리, 단절해야 하거나 공격, 점령해야 할 대상 역시 아니다. 성서는 세상을 교회가 속하지 말아야 할 곳이면서 동시에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세상은 신앙의 가치로써 살아내야 할 삶의 현장이다. 분리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다면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읽고’ ‘알아야’ 할 이유다.
미디어 연구자로서 나는 세상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를 읽는 데 미디어만큼 유용한 통로는 없다는 시각에서 관련 현상을 탐색한다. 종교라는 영역에 대한 미디어의 해석은 공공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해야 할 바람직한 위치를 규정하는 일련의 인식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종교에 대한 미디어의 평가는 세속사회의 운영원리인 세속성이 설정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기준 삼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기준에 부합할 때는 칭찬이, 그렇지 못할 때는 비판이 따라온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개신교에 대한 미디어의 비판은 세속사회가 상정하는 종교의 바람직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실망의 표현이다. 본래 실망과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기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비판은 역으로 ‘종교에 대한 세속사회의 기대’를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교회를 향해 비판적인 미디어에 대하여 마냥 억울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비판의 내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촘촘히 분석함으로써 세속사회가 말하는 종교의 필요와 역할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세속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신앙의 가치가 서로 만나는 접점을 발견해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를 향한 미디어의 시선이 비판적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 보도, 드라마, 영화, 온라인 담론 모두에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시작된 현상이다. 그 이전 미디어 비판의 주요 대상은 불교였다. 2000년대 들어서며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본격화되더니 ‘안티 기독교’라는 말까지 유통되었다. 이후 그 추세는 더 강화되었고 지난 ‘코로나19’ 국면은 그 회복에 대한 심각한 회의까지 불러왔다.
무엇이 이런 전환을 만들었을까? 쉽지 않은 설명이지만, 나는 ‘권력’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언론인은 개신교를 하나의 권력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명확해진 시점이 1990년대 후반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권력 친화적이며 나아가 스스로 주요 권력이 되었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시기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고유의 직업적 소명으로 인식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이런 인식은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강화되고 정당화되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교회가 이렇게 ‘권력’의 자리에 위치함으로써, 종교를 향한 세속사회의 기대와 충돌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디어에 투영된 기대를 살펴보면 종교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세속사회가 종교에 부여한 중요한 역할이다. 힘의 논리와 이기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사회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도 종교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사회제도는 종교뿐임에 대한 인정이다. 그런데 권력이란 근원적으로 약자의 편이 되기 어렵다. 자기 중심성을 토대로 쌓은 힘이기 때문이다. 약자의 편은 타자 중심적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세상이 교회를 권력으로 이해한다는 건 그들의 눈에 개신교는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집단이며, 또 이를 관철하는 힘까지 지녔다고 본다는 뜻이다. 결국 권력의 자리에 선 한국 교회는 세상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갈수록 하락하는 신뢰 속에서 개신교가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건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흐름 속에서 개신교는 명백히 권력이었다. 팬데믹 국면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차별금지법 논의에서도 미디어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는 항상 권력 행사의 주체로 인식된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갱신과 신뢰 회복은 스스로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 있음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를 통해 읽어야 할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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