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이 글에서 한국 교회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의 ‘안경’에 대해서는 유독 강조하지만, 스스로를 성찰하는 ‘거울’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다는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한다. 사실 한국 교회는 사회참여와 책임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초기의 선교사들은 기독교와 함께 근대 지성의 세례를 받고 조선 반도에 도착했다. 그들은 성경만 가르치지 않았으며 다양한 사회 선교의 역할을 수행했다. 남녀노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천했고, 당대의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위한 교육이나 가난한 자를 위한 의료 및 봉사 등의 사회 선교를 함께 수행했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교회는 ‘세계 형성적’ 역할을 강조하고 수행해왔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세상 속에서 변혁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이런 배경을 공유한다. 따라서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실천을 고민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독교적 관점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구별된 기독교적 실천이 요구된다. 문제는 기독교의 도덕적 담론과 실천이 예전 같지 않거나 심지어 더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를 더 교회답게 하는 길만이 잃어버린 공공성 회복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공동체주의적인 담론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개인 및 타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 (미국식) 공동체주의를 논하기에는 조금 성급한 면이 있다. 더구나 한국 교회의 다수는 현실에 기반한 변혁적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성과 속을 쉽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태도가 강하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라면 안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은 한국 교회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부분적으로 취사 선택하는 오류를 보였기에, 그 대안으로서 자아 성찰과 공공성 제고를 위한 열린 태도가 필요함을 말하고자 한다.
쉽게 말해, ‘안경’ 모티브는 교회가 세상을 향한 기독교적 관점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향해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을 주문했다(롬 12:2). 이를 위해서는 이 세상을 바로 보고 분별할 수 있는 안경이 필요하다. 이 안경은 성서에 기반하며 기독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기독교적 관점의 해석과 실천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세계관 운동은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 머물게 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위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한다는 장점이 있다. 맹목적 신앙을 경계하고 이성과 합리성을 존중하여 다양한 학문과의 대화와 공론장에서의 성숙한 참여의 길을 안내한다. 또한 ‘현실 도피 수단으로서 종교’라는 오명을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실천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기독교 신앙의 우선적 과제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오늘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광장 속 한국 교회는 주로 어떠한 사안에 대해 ‘기독교적인 것’과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나누고, 사이에 경계를 긋거나 벽을 세우는 것 같은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상을 향해 열린 자세로 이해하고 소통하기보다는,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발언을 교인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서슴없이 내뱉곤 하는데, 이는 매우 경솔한 행동이다. 그런 발언은 무엇보다 전도와 선교에 도움이 되질 않으며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집계된 한국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한국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작은 현상일 뿐이다. 독선적이거나 차별적인 태도는 기독교가 공적 영역에서 도덕적 우위를 갖고 있던 시기에도 문제이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기독교인이나 세상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라는 평가를 지나, “너나 잘하세요.” 또는 “믿고 거르는 개독교”의 시기를 지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독교가 사회적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안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신만의 안경을 내려놓고 거울을 집어들어야 할 때이다. 즉, 한국 교회는 오랜 시간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의 목소리와 필요와 고민에 대해 듣기보다 쉽게 판단하고 대답하려고 했음을 인정하고 돌이킬 필요가 있다. 이제는 우리의 안경이 더러워진 것은 아닌지 혹은 우리의 시력이 저하된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이다. 공적 영역 속에서 ‘기독교적 관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이 요구된다. 어쩌면 우리가 쓴 안경이 이미 왜곡되거나 편향된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안경 대신 거울을 든다는 것은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세상에 비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문화란 단지 정복할 대상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유연하고 포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교회는 자신을 성찰하고 복음을 위해 오히려 자기를 비우며 세상과 소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회적 책임과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가장 적극적으로 구제와 봉사에 앞장선 단체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를 향한 불신과 실망은 어디서부터 비롯할까? 이 질문은 세상에 비친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기독교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안경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 돌아보기를 소홀히 했다. 세상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이 말은 기독교가 사회적 요구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대응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상호 형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세상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자신의 목소리만을 고집하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거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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