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교회 밖의 친구들은 우리를 통해서 교회를 바라본다.” 이 말은 우선 각자가 그리스도의 흔적들, 선행, 덕, 성품 등 하나님을 떠올릴만한 어떤 것들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이 교회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들이 교회 밖 친구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비록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삶을 멋지게 살아내는 일에 실패하더라도, 교회공동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그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때,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느낀다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내가 교회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지 못하거나 확신이 없어 할 때, 사람들이 또한 그것을 느낀다는 것을 느낀다. 그때 우리는 각자 속한 교회에 굳이 친구들을 초대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마다 그들이 교회에 대해 큰 반감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피상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경험한 바로는 한국 교회를 많이 싫어하는 청년들은 과거 교회를 다녔거나 현재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교회에서 상처받았고 낙담했고 실망했고 지친 경험이 있는 청년들, 그러한 청년들과 함께 있었던 친구들을 캠퍼스에서 정말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또 캠퍼스에서 여러 기회에 교회를 떠난 후배,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교회를 추천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영혼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갈망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회든 가서 다시 영적으로 ‘아사’(餓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좁은 경험과 식견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캠퍼스에서 만났던 상처 입은 청년들로 인해서,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묻어버릴 수 없다.
또한 나는 가끔 한국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차라리 숨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미 실망감과 상처를 주었던 교회가 그 사람들에게 다시 소개된들, 계속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하는 우려이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들의 교회가 숨겨져 있다면 그 이미지가 그나마 더 좋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물론 나의 본심은 여전히 우리 시대 많은 청년이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물과 같이 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청년들이 ‘확신’을 가지고 소속된 교회를 선물과 같이 자발적으로 자랑하게 되지 않는 한 한국 교회에 ‘다시 한번’의 부흥과 부활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 청년들이 현재 이렇게 내 친구를 교회에 초대하고 싶을 만한 기쁜 곳으로 ‘확신’을 갖기 어렵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다단한 차원의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문제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지역 교회의 어른들과 청년들의 분열, 지도자(직분자)의 타락, 세례의 권위 축소, 목회자에게 과하게 집중된 권위로 야기된 문제 등등이다. 이 문제들은 한국 교회에서 이미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논해졌고, 또 그러한 논의는 어떤 면에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많은 경우 기성세대와 목회자들의 실수와 타락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지는 듯하다. 대게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던 문제들이다. 많은 경우 해결책은 문제의 일차적 당사자들인 교회 어른들, 외람되지만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먼저 문제의식을 스스로 느끼고 풀어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와 관련된 기대가 없다. 아니 어쩌면 의지적으로 더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교회의 청년들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았다. 어쩌면 문제도 함께 받았다. 여기서 우리 청년들의 조심스러움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한국 교회의 이 문제들을 거슬러 하나님을 뜻을 헤아리고자 하는 순전한 갈망, 그리고 성경적으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세워가고 그에 맞는 삶을 살려는 모습이 결국 선대의 수고와 삶을 부정하고, 그저 윗세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는 걱정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청년들 역시 선한 뜻으로 시작한 고민의 해법을 단순히 부모님 세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귀결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정말 슬픈 일은 교회를 많이 사랑하는 청년들이 공동체의 부정에 아파하고 갱신을 요구할 때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어른들의 경륜과 권위 앞에 버릇없게(?) 대들지는 못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기도 어렵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에게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의 도움과 살핌이 절실하다. 내가 진실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통해 드러내시려는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위기를 극복할 그루터기를 남겨두셨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한국 교회 안에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어른 성도들이 여전히 계시고, 또 바른 열심과 가슴앓이를 하는 청년들도 있다. 혹여 어른들께서 이러한 청년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을 충분히 격려하고 지지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청년들에게는 함께 이 말씀을 붙들자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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