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음, 괜찮네요. 주말에도 일할 수 있죠?” 그럭저럭 파트 타임 면접을 마쳤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들어온 질문. 교회 공동체의 리더 교육이 대부분 토요일이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될 것도 같아서 일요일만 제외하면 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21살, 내가 처음 겪어 본 사회의 편견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릴 적 할머니 따라 교회에를 갔을 때 교회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성인이 되고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선택했다. 꼬박꼬박 주일성수를 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찬양팀과 청년부 리더를 맡으면서 외부에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였다.
2004년, 어떤 유명인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그 날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와서 물었다. “소라 씨는 이번에 그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단순히 내 생각이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개신교를 공격하기 위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거야 자기 생각일 뿐이니까.”라고 받아들였는데 나에게 질문했던 그분한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두어 번 같은 질문을 더 들었던 기억이 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주일성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세상에 내놓아야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먼저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토요일 야간 근무로 주일 낮 근무를 대신했다. 그래야만 나는 안전하게 주일을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나마 합리적으로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20년 전후로 세상은 개신교인들에게 ‘합리적’일 것을 드러내놓고 요구한다고 느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삶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도 하나님을 제외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채워주셨다.”라는 철저한 신앙 고백조차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느새 사회를 감싸는 큰 틀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개별성을 강조하고, 절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문화적 흐름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절대성과 대립하고 있다. 현대의 청년들은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대신 본인들의 가치관도 충분히 존중받기를 원한다. 이런 지점에서 기성세대와 갈등이 일어나고, 여전히 수많은 교회에서는 “너의 신은 너의 신, 나의 신은 나의 신”인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지 고민하기보다 그건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고 치부한 채 틀렸다는 메시지만 전달하기 바쁘다. “왜?”라고 물었을 때, 질문자들이 요구하는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자의 위치에서 지금의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에는 지성도 영성도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신학이 없는 채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질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 주입식 신앙의 결과물로 기도와 말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곳, 정죄하는 손가락이 내부가 아닌 외부로만 향하는 곳, 세상을 밝히며 살아가는 신자들의 빛을 어둠으로 가리면서도 잘못된 것을 모르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그 안에 거하는지조차 의구심이 드는 그런 곳,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예수의 가르침을 묻고, 교회의 역할을 묻는다. 나 역시도 배운 대로 예수를 전하고 교회를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말하는 가르침들이 한국 교회에서 얼마나 드러나고 있는지, 또 나의 모습에는 얼마나 드러나고 있는지. 사실 우리는 설교로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공동체만 교회가 아니라 나 자신 역시 교회임을.
한국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할 때 비로소 사람들이 세상의 올바른 렌즈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레위기 19장을 참고한다면 거룩함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주울 수 있도록 밭에서 난 곡식이나 포도를 딸 때 전부 따거나 줍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웃을 억누르거나 다른 이의 품값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는 행위를 삼가며, 이웃을 재판할 때는 오로지 공정하고, 다른 이에게 해를 가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우리의 거룩함을 회복시킨다.
내 주변에서, 또는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유난히 한국 교회를 차갑게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분명 또 다른 청년들이 바라보는 한국 교회는 어느 공동체보다 따뜻하고, 어둠을 밝게 비추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뒤를 이을 신앙의 후배들이 세상의 눈으로 한국 교회를 볼 때는 나와 같은 경험보다 후자의 경험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기를 소원한다.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거룩하기를 소망하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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