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술에 대한 사랑과 반란
<기술, 선전, 정치, 혁명> / 이상민 저 / 고북이 / 2022
현대인은 기술에 대한 사랑에 깊이 빠져 있다. 머지않아 A.I.와 로봇 기술은 모든 힘들고 위험한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구할 것으로 보이고, 가상 및 증강 현실 기술과 결합한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만들어 내는 메타버스 상에서 온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초연결성을 이루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러니,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는 곧 현실이 될 것만 같고 기술에 대한 현대인의 사랑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무언가에 대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 사랑 때문에 어느 정도는 눈멀고 귀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 현대 기술을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새롭게 살펴보기도 해보지만, 기술 덕에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 현대 기술에 대해 좀처럼 불평할 것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그 시대의 잘못을 보지 못하던 백성들이 선지자의 준엄한 경고의 소리를 듣고서야 화들짝 깨어나는 것처럼, 현대 기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평을 듣는 일은 이 시대를 책임 있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현대 기술에 대한 긍정적 의견만 가득 담긴 ‘선전’에 취해서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에 접근하려면, 우리는 선지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듯한 마음으로 자크 엘륄(Jacques Ellul)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현대 기술에 대한 비평을 들어야 한다.
자크 엘륄은 현대 기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비판을 제기한 학자로 유명하지만, 그의 저서는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엘륄은 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신학적인 논의를 따로 나누어 논하는 편을 택하였기에, 엘륄이 가진 기술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 이상민 박사는 신간 <기술, 선전, 정치, 혁명>에서 자크 엘륄이 여러 저서를 통해 피력했던 현대 기술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비판적 불평들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담아내었다.
모두 3부로 나뉘어 집필된 이 책의 제1부는 엘륄의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제2부에서는 선전과 정치 체계 안에서 기술이 어떻게 하나의 체계로 자리 잡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마지막 제3부는 ‘혁명’의 본질적인 불가능성을 서술하면서 인격주의 운동을 지향하는 ‘반란’에 그리스도인들의 혁명적 참여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엘륄의 사상을 정리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나 금융위기 혹은 기본소득과 같은 최신 이슈들에 엘륄의 사상을 적용하는 것을 곳곳에서 시도한다. 이 책의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운 것은 사실이지만, 준엄한 심판을 경고하는 예언서에서도 늘 함께 발견되는 것과 같은 희망의 빛을 이 책 구석구석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제3부에서는 ‘혁명’과 ‘반란’의 개념을 분석하면서 종말론적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행동 강령을 찾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테러 행위’에 빗대어 기술 현상을 묘사하거나, 기술 때문에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소중한 부분들을 잃고 있으며, 기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성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은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에만 익숙했던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더 나아가 ‘신성한 것’(153쪽)이 되기에 이른 기술을 논하는 제1부의 마무리 지점에 이르러서는 특히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기술에 대해 어두운 긴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2부는 선전과 정치가 기술 현상에 어떻게 깊이 관여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엘륄 특유의 분석으로 매우 흥미롭다. 엘륄의 의하면, “정치는 선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적 환상을 이용하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무능을 유도한다.” 따라서, “정치적 환상을 벗어난 ‘시민’이 진정으로 민주적인 태도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엘륄은 이러한 활동을 “인간적 민주주의”라 규정한다.(255~259 쪽).
제3부에서는 ‘혁명’의 불가능성과 ‘반란’의 필요성을 다룬다. 엘룰은 “‘필요한 혁명’의 순간은 지나갔다.”(285쪽)라고 주장하면서도 아직 ‘반란’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제3세계의 실제적인 필요와 충족을 위해, 이자 없이, 채무의 상환 없이, 간섭 없이, 군사적 침략이나 문화적 침략 없이 완전히 이해관계를 떠나 제3세계에 원조하는 것, ‘비무력’(非武力)을 의도적으로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 모든 영역에서 분산과 다양화를 시행하는 것,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과 임금제도 폐지”(308쪽) 등의 실천하기 힘들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도 않은 혁명적 실천 강령들을 제안한다.
기후 문제, 양극화, 금융위기, 고령화, 청년실업과 같은 수많은 이 시대의 문제들에 기술 현상은 깊이 관여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가 대세인 오늘날 한국에서 현대 기술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깨닫고 이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방안을 찾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성서적 세계관을 통해 기술 현상을 올바르게 바라보아 현대 기술의 어두운 모습을 규명하고, 그로부터 그리스도인이 견지해야 할 행동 강령들을 찾아보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에 담긴 ‘반란’의 의미를 찾아보는 즐거운 독서 삼매경의 경험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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