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새롭네 '욥'
<욥 까닭을 묻다> / 김기현 저 / 두란노 / 2022
욥기. 참 넘기 힘든 산이다. 창세기와 비슷한 연대를 공유하니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이고, 어려운 내용과 지겨운 고통이 넘친다. 쉽게 웃을 수 있는 ‘틱톡’이 대세인 지금, 40여 장에 달하는 욥의 분투는 지루하고 길기만 하다. 다 치우고 얼른 42장의 회복과 축복에 도달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나의 발목을 <욥, 까닭을 묻다>가 잡고, 늘어진다.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여 높기만 하던 욥기를 집 앞 언덕 정도로 낮춘다.
저자는 김기현이다. 한국의 필립 얀시(Philip Yancey)로 불리기도 하는 그답게 잠자는 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성경의 인물은 살아나고, 변명의 기회를 얻는다. 이미 저자는 <내 안에 야곱 DNA>,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등의 책을 통해 멀게 느껴졌던 성경 인물과 독자 사이에 교감의 다리를 놓은 바 있다. 이번에는 ‘욥기’다. “왜 하필 욥일까?”라는 의문은 책을 펴는 순간 사라진다. 모두 고통과 ‘한 가족’이 된 지금,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욥기를 통해 하나님을 대언한다.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욥기 전체를 아우르는 묵상집이다. “텍스트 안의 드넓고 무궁한 행간”을 마음껏 사용한 작가의 묵상과 책 곳곳에 묻어나는 깊은 연구의 흔적은 이 책에 매력을 더한다. 고통의 문제는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기에 저자의 이러한 접근이 욥기를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가독성이다. 잘 읽힌다. 편안한 문장과 적절하게 나누어진 소단락은 친절하게 독자를 성경의 세계로 인도한다. 여기에 저자의 전공인 인문, 고전, 철학, 신학,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까지 버무려 풍성한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잘 쓰인 책이란 바로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욥, 욥의 아내, 욥의 친구들, 사탄, 리워야단 등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다. 우선 욥은 하나님께 대항했고, 욥의 아내는 악처 같은 언행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욥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결정적 공헌자’이다. 또 저자는 통상적으로 사탄, 세 친구, ‘리워야단’이 욥기에서 해석하기 까다로운 부분이지만,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이들 모두 ‘나’ 자신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평범한 혹은 신실한 신앙인인 나도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타인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의 저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이기에 참으로 뼈아픈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책 전체를 흐르는 핵심 주제는 '신정론'이다. 진퇴양난의 상황, 곧 하나님이 악하던지, 아니면 의인 욥이 죄인이어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욥이 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은 이 사실을 참을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도대체 누가 의인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인간이다. 욥이 지은 죄가 매우 크다고 치자. 설사 그렇더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드넓은 세계에 비하면 그의 죄는 먼지 한 줌만큼도 안 될 텐데. 그것이 하나님의 위엄을 해칠 리 없다. 하나님은 또 어떤 분이신가? 사랑이시다. 자기 아들까지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주셨다. 그런 하나님이 이리도 처절히 욥을 응징하신다고? 의인 욥을? 저자는 세 친구의 인과응보, 신명기적 하나님과 욥의 ‘신비’이자 ‘깊음’의 하나님을 비교하며 숨어 계신 진짜 그분을 변호한다.
언덕 위에서 보니 욥기가 참 좋다. 길고 긴 서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우울했던 이야기가 위로의 메시지가 되어 메아리친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우리가 가진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문구이다. 저자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욥기는 ‘나’에 대한, 그리고 “인생은 고통”이기에 고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준다. 동시에 개인의 신앙 속에 갇혀 있던 하나님을 ‘무한’의 영역, ‘신비’의 자리로 회복한다. 덕분에 오해는 풀리고 오늘이 해석된다. 욥기를 잡고 끙끙대는 누군가가 있다면, 혹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당신이라면 <욥, 까닭을 묻는다>의 일독을 권한다. 언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을 경험할 것이다.
“숨어 계신 하나님, 정면이 아니라 이면의 하나님을 보았던 욥은 그리스도 이전에 가장 크게 버림받았다. 그랬기에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하나님의 전면과 전모를 알아 간다.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에 절망하고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끝끝내 기도하는 욥은 하나님과 정말 가깝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욥과 그리스도처럼 그런 길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우리는 끝끝내 기도한다.”(168-9쪽).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